강주룡 — 평원고무공장 파업과 을밀대 고공농성
1930년 8월 평양고무공업조합이 노동자 임금을 17% 일방 삭감하겠다고 통고하자, 평원고무공장을 비롯한 11개 공장 1,800여 명의 노동자가 동맹파업에 들어갔다. 공장 여공이던 강주룡은 사용자가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는 데 항의해, 지상 12m 높이의 을밀대 지붕에 광목을 찢어 만든 줄을 타고 올라가 8시간 동안 "임금 삭감 반대, 여성 해방, 노동 해방"을 외쳤다 — 한국 노동운동사 최초의 고공시위였다. 강제로 끌려 내려온 뒤에도 단식으로 저항을 이어가 1주일 구류 처분을 받았고, 옥중에서 54시간 단식을 결행했다. 파업은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고, 신경쇠약과 소화불량으로 보석 출감한 강주룡은 두 달 만인 1931년 8월 13일 평양의 빈민굴에서 30세로 숨졌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주룡
- 위키백과 강주룡
- 위키백과 원산총파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