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회 해소론의 부상
민중대회 사건으로 민족주의 계열 지도부가 검거되자, 남은 지도부는 자치운동과 가까운 온건·합법 노선으로 기울었다. 코민테른 12월테제의 영향을 받은 사회주의 계열은 이를 기회주의로 규정하며 신간회 해소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노동자·농민을 계급별로 따로 조직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1927년 연대의 출발이었던 단체가, 이제 그 연대를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에 흔들리고 있었다. 광주학생운동·원산총파업 같은 대중투쟁의 고양을 "혁명적 전환기"로 본 사회주의 진영의 낙관이 이 해소론을 더욱 밀어붙였다.
참고 자료
- 우리역사넷 신간회 강령과 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