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 베이징에서 역사연구로
1923년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투쟁의 사상을 벼리는 한편,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회의가 결렬되고 새 정부 수립이 소련의 불허로 좌절되자,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와 점차 아나키즘에 이끌리며 우리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행동가에서 사상가·역사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던 전환의 해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신채호
- 우리역사넷 신채호
1923년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으로 의열투쟁의 사상을 벼리는 한편,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회의가 결렬되고 새 정부 수립이 소련의 불허로 좌절되자, 그는 베이징으로 돌아와 점차 아나키즘에 이끌리며 우리 고대사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행동가에서 사상가·역사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던 전환의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