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필드 — 3·1운동의 서른네 번째 민족대표
캐나다 출신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한국명 석호필)는 1916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세균학·위생학 교수로 부임했다. 1919년 2월 5일 그는 거사를 준비하던 이갑성과 비밀리에 만나 해외 정세를 알리는 역할을 맡았고, 3월 1일에는 탑골공원과 덕수궁 대한문 앞의 만세시위와 일본의 탄압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4월 18일에는 수촌리·제암리 학살 소식을 듣고 자전거로 일제의 감시를 피해 현장을 찾아, "떨리는 손"으로 잔해와 유골을 촬영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들은 상하이와 미국의 언론에 실려 일제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렸고, 견문록 『끌 수 없는 불꽃』으로도 남았다. 1920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출국당했지만, 그는 평생 "나는 조선인"이라 말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투쟁한 이들만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기록하고 세상에 알린 이들도 역사를 만든다는 것을 그는 보여준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위키백과 프랭크 스코필드
- 경향신문 제암리 학살사건
- 아이굿뉴스 34번째 민족대표
- 코리아넷 스코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