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 하와이 무장투쟁의 기수

1914년 6월 · 하와이 오아후

안창호·이승만과 함께 미주 한인사회 3대 지도자로 꼽힌 박용만은, 외교론·실력양성론과 뚜렷이 구별되는 무장투쟁론을 일관되게 주창했다. 1914년 하와이 오아후섬에서 대조선국민군단을 세워,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한인 청년들에게 둔전병 방식으로 군사훈련을 시켰다. 한때 300명이 넘는 단원이 목총을 들고 제식훈련을 했다. 그러나 외교 우선을 주장한 이승만과의 노선 갈등이 깊어지면서 미주 한인사회는 분열했고, 군단도 재정난으로 해체됐다. 그는 이후 베이징으로 건너가 활동을 이어가다 1928년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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