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인 사건 — 신민회 와해
1910년 데라우치 총독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다는 구실로, 일제는 1911년 평안도 일대 기독교 계열 민족운동가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했다. 안명근이 황해도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 적발된 안악 사건에서 시작된 이 조작 사건은 600여 명을 체포해 122명을 기소하고, 그중 105명에게 징역 5~10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105인 사건"으로 불렸다. 윤치호·양기탁·이승훈·이동휘 등 비밀결사 신민회의 핵심 간부들이 대거 투옥되면서 신민회는 사실상 와해됐다. 일제가 사소한 독립운동 가능성에도 날조와 고문을 서슴지 않는 폭압적 무단통치의 본질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한일병합으로 식민지배를 시작한 일제가 곧장 펼친 이 탄압은, 이후 민족운동이 비밀결사에서 국외 기지 건설로 재편되는 계기가 됐다.
관련 인물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5인사건
- 위키백과 일제강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