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에서 한반도가 제국과 직접 부딪친 가장 이른 기록이 여기 있습니다. 몽골 편이 13세기의 접점이라면 이 편은 그 1,300년 전이며, 접촉의 형태도 훨씬 다양합니다 — 군현 설치, 전쟁, 동맹, 유학, 이주, 그리고 제국의 장군과 관료가 된 한반도 출신들.
첫 두 시점을 눈여겨보십시오. 조공을 바친 쪽이 중원이었습니다. 한은 60년 넘게 흉노에 비단과 곡식을 보냈고, 조건을 정한 쪽은 흉노였습니다. 조공은 단일한 제도가 아니라 스펙트럼이었다는 이 시리즈의 원칙이, 그 출발점에서부터 확인됩니다.
살수(612)와 안시성(645), 나당전쟁(676)은 실제 승리이며 축소할 이유가 없습니다. 동시에 수가 이미 안에서 무너지고 있었다는 것, 당이 서쪽 토번 전선에 발이 묶여 있었다는 것도 함께 적었습니다. 이긴 사실을 줄이지도, 조건을 지우지도 않는 것이 이 시리즈의 방식입니다.
좌표와 반경은 개형(槪形)입니다. 한사군의 위치는 대동강 유역 중심이라는 학계 통설을 따랐습니다 — 평양 일대의 무덤과 봉니, 목간이 그 근거이며, 확정된 사실의 부정에는 중립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어느 방향에서 나온 주장에도 같게 적용됩니다.
648년 신라는 당과 손을 잡았습니다. 백제의 압박에 몰려 고구려와 왜에 차례로 도움을 청했다가 실패한 뒤였습니다. 그 결과 두 나라가 무너졌고, 이어서 당이 한반도 전체를 편입하려 하자 신라는 다시 당과 싸워 밀어냈습니다. 이때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이 신라군에 들어와 함께 싸웠습니다.
절박한 처지에서 내린 선택을 우리는 결과만 놓고 평가해도 될까요? 그리고 그 선택을 비판할 때, 우리는 그때 그들에게 있던 선택지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