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일어났나.** 1911년 10월 우창의 신군 봉기를 시작으로 각 성이 잇따라 독립을 선포했고, 이듬해 청 황제 푸이가 퇴위하며 진시황 이래 2천여 년의 제정이 끝났다.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이 세워진다.\n\n그러나 권력은 곧 위안스카이에게 넘어갔고, 그가 황제를 칭하려다 실패한 뒤에는 군벌들이 각지를 나눠 가졌다. 황제를 없애는 데는 성공했지만 공화국을 세우는 데는 실패한 것이다. 중국은 이후 30년이 넘는 분열로 들어선다.\n\n**그때 한반도는.** 경술국치 이듬해였다.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신민회가 와해되어 국내의 조직적 저항 기반이 무너졌고, 같은 해 만주 삼원보에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진다. 국내에서 길이 막히자 국경 밖으로 나간 것이다.\n\n**도착하기까지 — 동시였다.** 이 편에서 시차가 사라진다. 우리 사람이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n\n신규식은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해 중국 혁명 세력과 직접 교류했고, 중국동맹회에 가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1912년 상하이에서 동제사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훗날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자리 잡는 기반이 된다. 신해혁명의 성공은 조선 독립운동가들에게 두 가지를 실증했다 — 2천 년 왕조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공화제가 동아시아에서도 가능하다는 것.\n\n1917년 상하이에서 나온 대동단결선언이 그 결과다. 「융희황제가 주권을 포기한 그 순간 주권은 국민에게 넘어왔다」는 논리는 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의 전환이었다. 신규식과 조소앙이 그 자리에 있었고, 2년 뒤 임시정부 헌장 제1조 민주공화제로 이어진다.\n\n즉 우리의 공화제는 프랑스에서 직수입된 것이 아니다. 일본을 거쳐 어휘가 왔고, 중국을 거쳐 실물이 왔다. 상하이라는 도시가 그 접점이었다.\n\n**세계사적으로는** 이 혁명이 아시아에서 왕조 체제가 무너질 수 있음을 처음 보여줬다. 그리고 여기서 이 시리즈의 다음 편들이 예고된다 — 신해혁명이 남긴 미완의 과제가 38년 뒤 다른 방식으로 다시 처리되기 때문이다.\n\n무엇을 무너뜨리는 일과 무엇을 세우는 일은 왜 이렇게 다른가? 그리고 우리의 공화제는 어디에서 왔는가?
⑧ 신해혁명 — 그 자리에 우리 사람이 있었다
이 글은 혁명, 그때 우리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