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1848 혁명의 봄 — 같은 해에 쓰인 두 개의 문서

1848 · 독일 베를린 · 유럽 전역

**무엇이 일어났나.** 1848년 1월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봉기가 두 달 만에 파리·빈·베를린·부다페스트로 번졌다. 헌법과 참정권, 그리고 민족의 자결을 요구한 연쇄였다. 프랑스에서는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으며 남성 보통선거가 도입되었다. 빈에서는 재상 메테르니히가 달아났다.\n\n그리고 대부분 1년 안에 진압되었다. 프랑스의 공화정은 3년 뒤 쿠데타로 끝나고 다시 제정이 된다. 그래서 이 해를 「실패한 혁명의 해」라 부른다.\n\n다만 되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농노제가 이때 폐지되었고 되살아나지 않았다. 여러 나라에 헌법이 남았다. 그리고 망명자들이 흩어지며 사상을 실어 날랐다. 같은 해 2월 런던에서 짧은 소책자 하나가 인쇄되었는데, 공산당선언이었다.\n\n**그때 한반도는.** 1849년 헌종이 죽고 강화도에서 농사짓던 열아홉 살 청년이 왕이 된다. 철종이다. 안동 김씨가 왕을 골라 데려온 것이었고, 세도정치가 정점에 이른다. 삼정의 문란이 깊어져 이 시기 농민들이 실제로 부담한 세는 규정을 크게 넘었고, 1862년 임술민란으로 전국 70여 곳에서 농민 봉기가 일어난다.\n\n**도착하기까지 — 오지 않았다.** 1848년 유럽의 소식은 조선에 오지 않았다. 이 편의 ②층과 ③층이 거의 만나지 않는 이유이며, 그것을 억지로 잇지 않는 편이 정직하다.\n\n다만 나란히 놓으면 보이는 것이 있다. 같은 시기 두 곳 모두에서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커지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그것이 헌법과 참정권 요구로 조직되었고, 조선에서는 개별 고을의 봉기로 터졌다가 흩어졌다. 요구를 담을 형식이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차이다. 조선에서 그 형식이 처음 만들어지는 것은 1894년 동학농민운동의 폐정개혁안에서다.\n\n1848년에 인쇄된 그 소책자는 70년쯤 걸려 도착한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한반도에 들어왔고, 1918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이 결성된다. 유럽의 1848년이 한반도에 닿은 것은 그 사상이 러시아에서 한 번 권력을 잡은 뒤였다.\n\n**세계사적으로는** 이 해가 이후 100년의 의제를 미리 적어 놓았다. 헌법, 참정권, 노동, 민족자결. 거의 모든 곳에서 졌지만 거의 모든 곳의 다음 세기를 규정했다.\n\n실패한 혁명은 실패한 것인가? 그리고 어떤 요구가 봉기로 끝나지 않고 제도로 남으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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