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미국 독립혁명 — 106년 뒤에 맺은 조약

1776 · 미국 필라델피아

**무엇이 일어났나.** 1776년 7월 4일 열세 개 식민지의 대표들이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정부의 권력은 통치받는 자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적혀 있었다. 7년의 전쟁 끝에 1783년 독립이 승인되었고, 삼권분립에 기초한 최초의 근대 공화국이 세워졌다. 왕을 제한하는 대신 아예 두지 않는 형태였다.\n\n**그때 한반도는.** 조선은 그해가 정조 즉위년이었다. 즉위 직후 규장각을 설치했고, 2년 뒤에는 서얼허통절목을 반포해 서자에게 관직의 길을 일부 열었다. 신분의 벽에 낸 틈이었지만 신분제 자체를 건드리지는 않았다.\n\n여기서 대비가 선명해진다. 필라델피아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문장이 나온 그해, 한양에서는 왕이 서자에게 관직을 조금 열어 주는 것이 개혁이었다. 다만 짚어둘 것이 있다 — 그 문장에 서명한 사람들 상당수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 선언과 제도의 거리는 양쪽 모두에 있었다.\n\n**도착하기까지.** 106년이 걸렸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은 서양 국가와 처음으로 조약을 맺는다. 이 조약의 제1조에는 제3국이 한쪽을 부당하게 대하면 다른 쪽이 나서서 조정한다는 취지의 조항이 있었고, 조선 정부는 오랫동안 이것을 안전보장으로 이해했다.\n\n1905년 고종은 그 조항을 근거로 미국에 특사를 보낸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미국과 일본은 이미 서로의 세력권을 양해하는 합의를 마친 뒤였다. 조약의 문장과 실제 국제정치가 어긋난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조선 지식인들에게 참조점으로 남았다. 서재필과 이승만이 그곳에서 공부했고, 독립협회가 내건 공화적 구상에도 그 그림자가 있다.\n\n**세계사적으로는** 이 혁명이 하나의 선례를 만들었다. 식민지가 본국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국을 세울 수 있다는 것. 이 선례는 13년 뒤 프랑스로 되돌아가 재정 파탄과 혁명의 직접 원인이 되고, 다시 카리브해로 건너가 훨씬 급진적인 형태로 되풀이된다.\n\n한 나라의 독립선언이 다른 나라에 도착할 때, 무엇이 함께 오고 무엇이 오지 않을까? 조약의 문장은 왜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쪽에서 가장 자주 지켜지지 않을까?

관련 콘텐츠

이 글은 혁명, 그때 우리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도에서 관련 사건 보기

세계지도 루트에서 이 장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