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성 — 두 생의 부모, 불국사와 석굴암

751 · 경주 토함산 (불국사·석굴암)

경주 토함산에는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다. 두 곳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이 두 절을 한 사람이 세웠다고 삼국유사는 적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특이하다 — 하나는 이승의 부모를 위해, 다른 하나는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었다는 것이다.

효선편의 조목 제목이 그것을 그대로 말한다. 「대성효이세부모(大城孝二世父母)」, 대성이 두 세상의 부모에게 효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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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 — 모량리의 가난한 아이**

신문왕 때, 모량리에 경조(慶祖)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다.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이마가 평평해 성(城) 같다 하여 대성(大城)이라 불렀다.

집이 가난해 기를 수 없어, 아이는 부잣집 복안(福安)의 집에서 품을 팔았다. 그 집에서 밭 몇 이랑을 얻어 먹고살았다.

어느 날 점개(漸開)라는 승려가 흥륜사에서 육륜회(六輪會)를 열려고 복안의 집에 와서 시주를 권했다. 복안이 베 오십 필을 내놓았다.

점개가 축원했다. 시주가 보시를 좋아하니 천신이 항상 지켜줄 것이며,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고 편안하며 오래 살 것입니다.

대성이 그 말을 듣고 집에 뛰어들어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문간에서 스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전생에 좋은 일을 하지 못해 지금 이렇게 가난한데, 지금 또 보시하지 않으면 다음 생에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가 얻어 부치는 밭을 법회에 보시해 뒷날의 갚음을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가 좋다고 했다. 밭을 점개에게 보시했다.

얼마 뒤 대성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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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

그날 밤,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었다.

모량리 대성이라는 아이가 지금 네 집에 태어날 것이다.

집안 사람들이 놀라 사람을 시켜 모량리를 살펴보게 하니, 과연 대성이 그날 죽었다고 했다. 그 소리가 있던 때와 같은 날이었다.

김문량의 아내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았다. 왼손을 꼭 쥐고 펴지 않다가 이레 만에 폈는데, 손바닥에 대성(大城) 두 글자를 새긴 금패가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대성이라 했다.

전생의 어머니 경조를 모셔와 함께 봉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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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사냥**

대성이 자라서 사냥을 좋아했다.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아래 마을에서 잤다.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나타나 꾸짖었다.

네가 어찌 나를 죽였느냐. 내가 도리어 너를 잡아먹겠다.

대성이 두려워 용서를 빌었다. 귀신이 말했다.

네가 나를 위해 절을 세워주겠느냐.

대성이 그러겠다고 맹세했다. 꿈에서 깨니 땀이 흘러 자리를 적셨다.

그 뒤로 사냥을 그만두었다. 곰을 잡은 자리에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이 일로 마음에 느끼는 바가 있어 자비의 원이 더욱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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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절**

대성은 이승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를 세웠다.

석불사가 지금의 석굴암이다.

신림(神琳)과 표훈(表訓) 두 성사를 청해 각각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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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을 만들 때의 일화**

삼국유사는 석굴을 만들 때의 이야기를 하나 전한다.

큰 돌 하나를 다듬어 감실의 뚜껑을 만들려 하는데, 돌이 갑자기 세 조각으로 갈라졌다.

대성이 분해하다가 어렴풋이 잠이 들었다.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대성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쪽 고개로 달려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공양했다. 그래서 그곳을 향령(香嶺)이라 한다.

실제로 석굴암 천장 돔의 덮개돌은 세 조각으로 갈라져 있다. 이 기록이 그 사실과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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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의 문제**

삼국유사는 이 조목에 절의 기록(사중기)을 인용해 연대를 적는다.

경덕왕 10년(751년)에 대성이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고, 혜공왕 10년(774년) 12월에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이어받아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대성의 아버지 김문량이 재상을 지낸 것은 성덕왕 때다. 삼국사기에는 김문량이 711년에 중시(中侍)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일연은 이 어긋남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향전(鄕傳)과 절의 기록이 서로 다르다고 적어 놓았다. 어느 쪽이 옳은지 단정하지 않고, 다르다는 사실 자체를 남겨 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삼국유사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판본이 다르면 다르다고 쓰고, 계산이 안 맞으면 안 맞는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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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어떻게 읽을까**

먼저 이것은 불교의 인과응보와 윤회를 설명하는 이야기다. 가난한 아이가 마지막 남은 밭을 보시하고, 그 공덕으로 재상의 아들로 태어난다.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는 승려의 말이 그대로 실현된다.

동시에 효에 관한 이야기다. 이 조목이 효선편에 놓인 이유다. 그런데 여기서 효의 대상이 둘이다. 지금의 부모와 전생의 부모.

앞서 보았듯 출가한 승려에게 효는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다. 유교의 효는 살아 있는 부모를 봉양하고 대를 잇는 것이다. 불교는 그 틀 바깥에 있다.

이 이야기는 그 문제에 대한 하나의 답으로 읽힌다. 효의 대상을 이번 생으로 한정하지 않으면, 부모의 범위는 무한히 넓어진다.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모든 존재가 언젠가 나의 부모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을 짓는 것이 효가 된다. 봉양이 아니라 공덕으로 갚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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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

김대성이 실존 인물인지, 불국사와 석굴암을 정말 그가 세웠는지는 확언하기 어렵다. 국가적 규모의 사업이었으므로 왕실이 주도했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다만 751년 창건이라는 연대는 여러 연구에서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 시기 신라가 이런 건축을 할 수 있는 역량과 사상적 배경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두 건축물은 지금도 서 있다. 토함산 서쪽에 불국사가 있고, 동쪽 중턱에 석굴암이 있다. 이승의 부모를 위한 절과 전생의 부모를 위한 절이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셈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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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유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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