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시조들은 대개 알에서 나온다. 고구려의 주몽도, 신라의 박혁거세도, 가야의 수로왕도 그렇다. 이 반복은 우연이 아니다.
『삼국유사』 기이편은 이 건국 신화들을 차례로 싣는다. 순서대로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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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 — 고구려**
북부여 왕 해부루의 뒤를 이은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이름은 유화, 하백(河伯, 물의 신)의 딸이라 했다.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정을 통했다가 부모에게 쫓겨났다고 했다.
금와가 그녀를 데려와 방에 가두었는데, 햇빛이 따라와 비추었다. 몸을 피해도 햇빛이 쫓아왔다. 이윽고 잉태해 알 하나를 낳았다. 크기가 닷 되들이만 했다.
왕이 알을 버렸다. 개와 돼지에게 던졌으나 먹지 않았고, 길에 버렸으나 소와 말이 피해 갔으며, 들에 버렸더니 새들이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이 깨뜨리려 했지만 깨지지 않아 결국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 일곱 살에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 말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했으므로 그렇게 불렀다.
금와의 아들들이 시기해 죽이려 하자 주몽은 어머니의 말을 듣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강에 이르러 건널 배가 없자 물을 향해 외쳤다 —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손자다. 그러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다. 주몽이 건너자 다리는 흩어졌고, 쫓아온 기병들은 건너지 못했다.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했다. 스물두 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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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 신라**
진한 땅에 여섯 마을이 있었다. 마을의 우두머리들이 모여 걱정했다 — 우리에게는 임금이 없어 백성이 제멋대로다. 덕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야 하지 않겠는가.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 아래 나정(蘿井)이라는 우물가에 이상한 기운이 번개처럼 땅에 드리워 있었다.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하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가서 보니 자줏빛 알 하나가 있었다. 말은 사람을 보자 길게 울고 하늘로 올라갔다.
알을 깨자 사내아이가 나왔다. 몸에서 광채가 났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었으며, 해와 달이 맑아졌다. 그래서 이름을 혁거세(赫居世)라 했다 —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같은 날, 사량리 알영정이라는 우물가에 계룡(鷄龍)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았다. 얼굴은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 같았다. 월성 북천에 데려가 씻기니 부리가 떨어졌다. 우물 이름을 따 알영이라 했다.
두 사람이 열세 살이 되던 해, 남자는 왕이 되고 여자는 왕후가 됐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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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탈해 — 신라 4대 왕**
혁거세 때, 바다 건너 배 한 척이 떠내려왔다. 궤짝 하나가 실려 있었는데, 까치들이 따라 울며 날았다.
열어 보니 단정한 사내아이와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들이 있었다. 아이가 말했다 — 나는 용성국 사람이다. 우리 왕비가 알을 낳자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궤에 넣어 바다에 띄웠다.
탈해는 토함산에 올라 성 안을 내려다보다 살 만한 곳을 발견했다. 호공(瓠公)이라는 사람이 사는 집이었다. 탈해는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옆에 묻어 두고, 다음 날 찾아가 말했다 — 여기는 우리 조상이 살던 집이다.
호공이 아니라고 하자 관가로 갔다. 관리가 무슨 증거가 있느냐 물으니 탈해가 답했다 — 우리는 본래 대장장이였다. 땅을 파 보라.
파 보니 숫돌과 숯이 나왔다. 탈해가 그 집을 차지했다.
남해왕이 그가 지혜로운 것을 알고 사위로 삼았다. 뒤에 왕위에 올라 신라 4대 왕이 됐다.
(이 이야기에서 탈해가 속임수로 남의 집을 빼앗는 대목은 후대에 여러 해석을 낳았다. 대장장이라는 신분과 결부해 철기 제작 집단의 이주로 읽는 견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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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알지 — 경주 김씨의 시조**
탈해왕 때, 밤중에 월성 서쪽 숲에서 밝은 빛이 났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웠고, 구름 속에 황금 궤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궤를 열자 사내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거두어 길렀다.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金)이라 하고, 이름은 알지라 했다.
닭이 울던 숲이라 하여 그 숲의 이름을 계림(鷄林)이라 고쳤고, 이것을 나라 이름으로 삼기도 했다.
알지의 후손에서 신라 김씨 왕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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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반복은 무엇을 말하는가**
네 이야기에 공통된 요소들이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다. 혹은 알에서 나온다. 혹은 바다 건너 온다. 어느 쪽이든 그 집단의 시조는 이 땅에서 평범하게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빛이 따라다닌다. 유화를 비춘 햇빛, 나정의 번개 같은 기운, 계림의 자줏빛 구름. 왕권의 신성함을 빛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여러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동물이 개입한다. 주몽의 알을 덮은 새들, 나정의 흰 말, 궤짝을 따라온 까치, 계림의 흰 닭. 신성한 존재의 출현을 알리는 매개다.
난생(卵生) 신화는 동아시아 남부와 동북아시아에 널리 분포한다. 알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어머니의 몸에서 나오는 보통의 출생과 구별되는 방식이며, 하늘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상징으로 읽힌다.
한편 이 신화들의 정치적 기능도 분명하다. 여섯 마을의 촌장들이 모여 임금을 찾는 장면은, 여러 집단이 연합해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과정을 압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라에 박·석·김 세 성씨의 왕계가 번갈아 나타나는 것도, 서로 다른 세력 집단이 왕위를 나누어 가졌던 초기 사정을 반영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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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도 이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다만 훨씬 짧고 건조하다. 김부식은 신이한 요소를 최소한만 남기고 연대와 사실 위주로 정리했다.
반면 일연은 자세히 적었다. 알의 크기, 까치의 울음, 부리가 떨어진 우물, 숯과 숫돌 — 이야기로서의 재미를 살리는 세부가 그의 책에 살아 있다.
덕분에 우리는 신라 사람들이 자기 조상을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알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