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와 열전 사이에 끼어 가장 덜 읽히는 부분 — 잡지(雜志) 9권과 연표 3권. 그런데 어떤 학문들에게는 이 부분이 삼국사기의 진짜 보물창고다. 잡지는 제사와 음악, 옷과 수레, 집과 그릇, 지리와 관직을 다룬다. 왕과 전쟁이 아니라 사람들이 입고 타고 살고 부르던 것들의 기록 — 김부식이 "자료가 흩어져 부득이 중국 문헌에서라도 찾아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바로 그 부분이다. 없는 자료를 긁어모아 삼국의 살림살이를 복원하려 한 흔적이, 역설적으로 이 책의 성실함을 가장 잘 보여준다.
악지(樂志)를 펴면 음악의 역사가 나온다. 왕산악이 중국의 칠현금을 고쳐 거문고를 만들었다는 것, 백결선생이 가난한 살림에 방아 소리를 흉내 낸 곡을 지었다는 것, 그리고 우륵 — 가야의 가실왕이 "여러 나라의 말이 다른데 소리가 어찌 하나이겠는가"라며 열두 줄 가야금을 만들게 했고, 우륵이 열두 곡을 지었으며,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악기를 안고 신라로 넘어가 진흥왕 앞에서 연주했고, 국원(지금의 충주)에서 제자들을 길렀다는 것. 탄금대라는 이름이 그 기록에서 왔다. 멸망한 가야가 소리로 살아남은 경로가, 이 몇 장에 온전히 담겨 있다 — 한국 음악사는 사실상 이 악지에서 시작한다.
지리지 4권은 더 뜻밖의 보물이다. 신라 9주의 고을 이름들을 정리하면서, 김부식은 각 고을의 옛 이름 — 고구려·백제 시절의 지명 — 을 함께 적어 두었다. "매홀(買忽)은 일명 수성(水城)이다" 같은 식이다. 이 병기 덕분에 언어학자들은 買가 물(水), 忽이 성(城)을 뜻하는 옛말이었음을 알아낸다. 고구려와 백제는 자기 말로 된 문헌을 한 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는데, 그 언어의 파편이 경덕왕의 지명 한화(漢化) 이전 옛 이름들 속에 화석처럼 박혀 살아남은 것이다. 고대 한국어 연구는 상당 부분 이 네 권 위에 서 있다 — 김부식은 자신이 언어학의 타임캡슐을 묻고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연표 3권에도 조용한 반전이 하나 있다. 삼국의 연대를 중국 왕조와 나란히 대조한 표인데, 김부식은 법흥왕의 건원(建元) 이래 신라가 썼던 독자 연호들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실었다. 사론에서는 제후국의 연호 사용을 비판했으면서, 기록에서는 남긴 것이다. 훗날 조선의 동국통감이 신라 연호를 아예 표기하지 않기로 한 것과 비교하면 — 비판하되 지우지는 않는 것과 처음부터 지우는 것의 차이가 보인다. 사론의 김부식과 기록의 김부식은 자주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 그 사론 중 가장 무거운 것을 읽을 차례다. 백제의 마지막 장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