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가 전하는 것 — 일식과 메뚜기 떼의 연대기

1145 · 삼국의 하늘과 들판

이제 책장을 연다. 본기 28권은 왕의 연대기다 — 몇 년에 즉위했고, 몇 년에 성을 쌓았고, 몇 년에 훙(薨)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 뜻밖의 기록들이 촘촘히 박혀 있다. 몇 년 몇 월, 해가 먹혔다(일식). 혜성이 나타났다. 지진이 있었다. 메뚜기 떼가 곡식을 갉아먹었다. 서리가 일찍 내려 콩이 죽었다. 왕과 전쟁의 역사인 줄 알고 연 책이, 실은 천 년 치 하늘과 들판의 관측 일지이기도 한 것이다.

일식 기사만 예순여 차례다. 흥미로운 것은 현대 천문학으로 그 날짜들을 역산해 보면 상당수가 실제로 그 무렵 한반도 하늘에서 일어난 일식과 겹친다는 점이다(박창범 등의 연구 — 다만 관측 위치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진행형이다). 일식은 조작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기록이다. 후대에 지어내려면 천체 역학을 알아야 하니까. 그래서 이 기사들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김부식의 창작"이라는 식민사학의 주장에 맞서는 흥미로운 물증으로 논의되어 왔다 — 적어도 누군가가, 그 옛날부터, 하늘을 보고 적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재이(災異) 기록의 가치는 또 다르다. 가뭄과 홍수, 지진과 우박, 전염병과 기근 — 왕조의 연대기에 이런 것이 꼬박꼬박 적힌 이유는 유교적 세계관 때문이다. 하늘의 이변은 임금의 정치에 대한 경고라는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사고. 그러니까 이 기록들은 당대에는 정치적 문서였는데, 천 년이 지난 지금은 전혀 다른 학문의 광맥이 되었다. 고대 한반도의 기후를 복원하는 기후사 연구자들, 지진의 주기를 추적하는 지질학자들이 이 책을 편다. 김부식은 상상도 못 했을 독자들이다.

그리고 본기의 문체 — 앞서 4편에서 본 유교적 재단의 결과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과장도 영탄도 없이, 사실을 사실의 자리에 놓는 담담한 연대기체. "가을 7월, 서리가 내려 콩을 해쳤다. 겨울 10월, 왕이 죽었다." 이 건조함이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신화와 전설이 역사를 대신하던 시대에, 연도와 사실을 이 밀도로 쌓아 올린 기록이 있었다는 것 — 우리가 왕대 연표를 만들고 지도에 사건을 찍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이 건조한 문장들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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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삼국사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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