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라는 선택 — 체제 속의 자존과 편향

1145 · 개경

역사서는 목차에서부터 말을 한다. 삼국사기 50권의 구성은 이렇다 — 신라본기 12권, 고구려본기 10권, 백제본기 6권, 연표 3권, 지(志) 9권, 열전 10권. 이 목차에는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두 개의 신호가 함께 들어 있고, 김부식 논쟁의 절반은 사실 이 목차를 어떻게 읽느냐의 문제다.

첫 번째 신호 — 본기(本紀)라는 이름. 중국 정사의 기전체에서 본기는 천자(황제)의 기록에만 쓰는 격식이고, 제후는 세가(世家)로 낮춰 적는 것이 원칙이다. 김부식은 유교적 명분론에 누구보다 밝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삼국의 왕들을 세가가 아니라 본기로 세웠다. 삼국을 중국사의 부록이 아니라 각자 완결된 나라로, 그 임금들을 독자적 서술의 주인으로 대접한 것이다 — 사대주의자의 목차라고 부르기 어려운 선택이며, 조선의 일부 유학자들이 오히려 "참람하다"고 불편해했던 대목이기도 하다.

두 번째 신호 — 분량의 기울기. 신라 12권, 고구려 10권, 백제 6권. 물론 신라가 가장 오래 존속했으니(992년) 분량 차이에는 이유가 있다. 그러나 잔존 사료의 양 자체가 이미 신라 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 승자의 기록이 살아남는 법이다 — 편찬자 자신이 그 승자의 후예였다. 서술의 결도 다르다. 통일의 서사는 신라의 시점에서 흐르고, 김유신에게는 열전 10권 중 3권이 주어지는 파격이 베풀어지며, 백제는 상대적으로 건조하게,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가혹하게 다뤄진다. 신라 정통론이라 부를 만한 기울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정직한 초상은 이렇다 — 자국사의 자존과 신라 중심의 편향이 한 목차 안에 공존하는 책. 어느 한쪽만 보면 김부식은 자주의 사가가 되거나 사대의 원흉이 되지만, 두 신호를 함께 보면 한 인간이 보인다. 제 나라의 역사를 세우려 했으되, 그 "제 나라"의 중심을 자기 가문이 나온 신라에 두었던 사람. 이 기울기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자리가 백제의 마지막 장이다 — 그 판결문은 9편에서 읽는다. 하지만 판결문으로 건너뛰기 전에, 먼저 책장 안으로 들어가 보자. 이 쉰 권이 실제로 무엇을 전하고 있는지를.

출처

이 글은 삼국사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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