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그리고 35년 —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2015 5월 14일 · 서울고등법원

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조작된 증거로 3년을 복역한 사람이 무죄를 확정받는 데 24년이 걸렸고, 그 조작에 관여한 이들 다수는 그사이 검찰과 정치권의 요직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1991년 5월,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잇단 분신 사망이 이어지던 시기에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소속 김기설 씨가 분신해 숨졌다. 검찰은 같은 단체의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교사했다고 발표했다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 감정이 핵심 증거였다. 강기훈은 자살방조·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됐고 3년간 복역했다. 정권에 불리하게 흘러가던 분신 정국이 이 발표를 계기로 급격히 가라앉았다는 것이 오래된 정황적 평가다.

조작 의혹은 처음부터 제기됐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재조사를 통해 국과수 필적 감정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며 재심을 권고했다 — 이때 국과수가 5명의 감정인으로 재감정한 결과 필체가 다르다는 의견이 나와 1991년 당시의 감정을 뒤집었고, 원래 감정인이었던 김형영 씨조차 "감정인에 따라 판정이 다를 수 있다"며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권고에 당시 수사팀의 일원이었던 곽상도 검사(훗날 자유한국당 의원)는 사과 대신 "문제가 있었다면 당시 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 지금 와서 유서대필이 아니라는 것은 난센스 아니냐"는 반응을 내놨다.

2009년 서울고법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이자 서울고검은 다음 날 즉각 항고했다. 대법원이 재심 개시를 최종 결정한 것은 2012년이었다 — 재심 청구부터 개시 결정까지만 3년이 걸린 것이다. 2014년 2월 재심에서 서울고법은 필적 감정의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살방조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다만 함께 유죄가 확정됐던 국가보안법 위반 부분은 강기훈이 재심을 청구하지 않아 별도로 남았다). 검찰이 다시 상고했고, 2015년 5월 14일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사건 발생 24년 만에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2018년에는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수사 과정의 인권 침해를 확인하고 검찰에 공식 사과를 권고했다.

이 사건에 관여했던 이들의 이후 경력은 이 시리즈의 다른 글들과 겹친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강신욱 검사는 이후 대법관에 임명됐고(인사청문회에서 이 사건이 논란이 됐다), 야간 조사를 맡았다고 밝힌 곽상도 검사는 이후 국회의원이 됐다 — 시리즈2에서 다룬, 대장동 관련 재판이 검찰의 재기소로 1년 9개월 멈춰 섰던 그 곽상도다. 강기훈은 2014년 재심 최후진술에서 이 사건의 책임자로 강신욱·곽상도·김기춘 등 15명의 이름을 직접 읊었다.

국가배상 소송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2017년 법원이 국가와 국과수의 책임을 인정해 배상을 명했지만, 불법 구금·밤샘 조사·변호인 접견권 침해 등 검사 개별 행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022년 대법원이 원고 승소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2026년 5월 21일 — 이 글을 쓰는 시점 불과 두 달 전 — 파기환송심에서 국가배상 책임이 추가로 인정돼 위자료 5,333만 원 지급이 확정됐다. 사건 발생으로부터 35년 만에 모든 민형사 판단이 마무리된 것이다. 다만 이 마지막 판결에서도 "검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조작하고 부당하게 공소를 제기했다"는 강기훈 측의 핵심 주장은 끝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 국과수 감정의 잘못은 인정됐지만, 검찰의 조직적 조작까지는 확정되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된 것이다.

정리하면 이렇다. 무죄는 확정됐고 국가배상도 확정됐지만, ‘조작’이라는 표현이 사법적으로 완전히 확정된 적은 없다. 그 사이 관여자들의 경력은 대법관과 국회의원으로 이어졌다. 조작이 있었다고 믿는 사람과, 절차상 잘못은 있었지만 조작까지는 아니라고 보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35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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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술대 위의 검찰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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