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지연을 만드는 손이 늘 재판부의 게으름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 검찰의 재기소 전략도 재판을 멈춰 세울 수 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2021년 대장동 개발업자 김만배 씨로부터 아들 곽병채 씨의 화천대유 퇴직금·상여금 명목으로 50억 원(실수령 25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22년 2월 기소됐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였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2023년 2월 8일 1심은 뇌물·알선수재 혐의 전부를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50억 원이 사회통념상 과다하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하나은행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대가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아들이 경제적으로 독립된 성인이라 곽상도 본인이 받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별도로 걸려 있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벌금 800만 원이 선고됐다. "곽상도 무죄, 국민이 납득할까" 같은 제목의 사설이 여러 신문에 실렸을 만큼 파장이 컸다.
검찰은 항소하는 한편, 같은 50억 원을 다른 죄목으로 다시 겨눴다. 2023년 10월 곽상도·곽병채 부자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추가 기소한 것이다 — 앞선 재판에서 무죄가 난 그 돈을, 이번에는 "성과급으로 가장해 은닉했다"는 구성으로 다시 기소했다. 곽상도 측은 이를 "이중 기소"라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재기소 사건의 1심 결과를 지켜보겠다며 원래 항소심(2023년 12월 첫 기일)을 사실상 멈췄다. 2024년 7월 한 차례 공판이 열린 뒤, 재기소 사건 1심이 끝날 때까지 기일이 "추후지정"으로 미뤄졌다. 그 재기소 사건 1심은 2026년 2월에야 선고됐는데 — 곽상도에게는 공소기각(검찰의 자의적 이중 기소라는 재판부의 지적), 곽병채에게는 무죄였다. 원래의 항소심은 이 공소기각 판결이 나온 뒤인 2026년 4월 14일에야 재개됐다 — 2023년 12월 첫 기일로부터 2년 4개월, 2024년 7월 마지막 공판으로부터는 1년 9개월 만이었다. 이 글을 쓰는 시점 항소심은 아직 진행 중이며, 결론은 나지 않았다.
검찰의 설명은 "동일 사안에 대한 판단의 일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사건들을 함께 심리할 필요가 있었다"는 취지다. 곽상도 측의 주장은 정반대다 — 무죄를 뒤집기 위해 검찰이 사실상 같은 혐의를 다른 죄목으로 재포장해 재판을 두 번 받게 만들었고, 그 결과 정작 처음 무죄를 받은 사건의 항소심 결론이 2년 넘게 미뤄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기소 사건의 1심 재판부조차 "검찰이 뒤집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자의적으로 공소권을 행사했다"며 곽상도에게 공소기각을 선고했다 — 재판부 스스로 검찰의 재기소 방식에 제동을 건 사례다.
패스트트랙 사건이 재판부의 기일 연기 누적으로 멈췄다면, 이 사건은 검찰의 재기소 전략 자체가 항소심 진행을 멈춰 세웠다. 지연을 만드는 손이 매번 같지 않다는 뜻이다. 무죄를 다투는 상황에서 2년 넘게 항소심 결론을 못 들은 채 기다려야 했던 시간은, 유죄가 확정된 뒤 사면까지의 시간과는 다른 종류의 부담이라는 점도 함께 적어둔다 — 이 시리즈가 다루는 "느린 재판"은 유죄 확정을 늦추는 지연만이 아니라, 무죄를 다투는 사람의 결론을 늦추는 지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