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의 첫 문서는 1950년 11월 23일 「지리산 빨치산당 김재연지대 당위원회 제1호 총회 회의록」이다. 9·28 후퇴 두 달 뒤, 산에 들어간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당 조직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어 조직위원회, 당위원회, 당대표회의, 상무위원회 회의록이 1951년 1월 5일까지 날짜순으로 남아 있다. 문서 표제가 도중에 바뀐다 — "지리산 빨치산당 김재연지대 당위원회"에서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당 김재연지대당부"로. 산의 무리가 북의 지휘 체계 아래 정규 편제로 재편되는 과정이 표제에서 그대로 보인다.
그 편제의 꼭대기에 있는 문서가 1951년 1월 2일자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002호 「적후에 있는 유격대들의 활동을 확대 발전하는 데 대한 명령」이다. 뒤이어 총참모장 명의의 「기술인원 배치 및 각종 전투기재 배당에 대한 지령」이 붙어 있다. 남한 빨치산이 자생적 저항이었는가 북의 후방 작전이었는가 하는 오랜 논쟁에 이 문서는 한쪽 답을 준다 — 적어도 1951년 초 이후로는 최고사령부의 명령 체계 안에 있었다. 다만 명령이 내려왔다는 것과 그 명령이 산에서 실제로 통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세력 통계표의 "이탈" 칸이 그 간격을 보여준다.
1권 뒷부분(인쇄 498~555쪽)에는 남부군 402·403·404연대 소속 대원들이 1951년 11~12월에 쓴 자서전이 실려 있다. 각자의 출생·가족·학력·경력·입산 경위를 조직에 제출한 신상 기록이다. "왜 산으로 갔는가"에 가장 가까이 답할 수 있는 1차 자료지만, 읽을 때 두 가지를 감안해야 한다. 조직이 요구한 형식에 맞춰 쓴 문서라는 것, 그리고 필자들이 곧 겨울 대토벌을 맞게 된다는 것. 이 자서전들은 아직 판독하지 않았다 — 이 시리즈가 다음으로 할 일이다.
1권에는 이 밖에도 강철재부대 전투일지(1951.6~1952.2), 김지회부대 대열 명단(1952.5), 동해남부전구 사령관 남도부 명의의 빨치산 원호증과 훈장 수여 증명서(1952.1.1), 각 도당·유격대 명의의 경고문과 호소문이 있다. 경고문은 대개 "소위 국군·경찰·방위대원들에게"로 시작한다 — 산이 산 아래를 향해 말하던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