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⑨ 임나 네 현을 주었다는 기사 — 512년의 뒤집힌 문장
주장
일본서기 계체기 6년(512) 조는 백제가 사신을 보내 임나의 상다리·하다리·사타·모루 네 현을 달라고 청하자 왜가 이를 주었다고 적는다. 왜가 한반도 남부의 땅을 마음대로 떼어 줄 수 있는 위치였다는 근거로 오래 인용된 기사다.
반박
이 기사는 임나일본부설의 축소판이다. 사실 부분과 틀 부분을 갈라 보면 무엇이 일어났는지가 드러난다.
사실 부분은 6세기 초 백제가 남쪽으로 세력을 넓혀 영산강 유역과 섬진강 방면을 차례로 편입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5세기까지 백제와 다른 양식의 무덤(옹관묘, 일부 전방후원형 무덤)이 나오다가 6세기 들어 백제식 무덤과 유물로 바뀐다. 고고학이 보여 주는 흐름과 512년이라는 시점이 맞물린다.
틀 부분이 주었다(賜)는 한 글자다. 왜가 소유하지 않은 땅을 줄 수는 없다. 일본서기는 8세기의 관점에서 한반도 남부를 임나라는 이름으로 묶고, 그 처분권이 천황에게 있었던 것처럼 서술한다. 백제가 스스로 확보한 지역을 왜의 하사로 적은 것이다. 게다가 이 대목에는 뇌물을 받고 땅을 넘긴 신하가 처벌됐다는 후일담까지 붙는데, 이는 왜 내부의 정치 서사에 가깝다.
2010년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는 4~6세기 왜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데 양국 위원이 견해를 같이했다. 일본 교과서에서도 임나일본부라는 용어는 사실상 사라졌다. 512년 기사는 그 학설의 마지막 버팀목 가운데 하나였고, 지금은 백제의 남방 진출을 거꾸로 적은 기록으로 읽는다.
출처
- [단행본] 일본서기 권17 계체기 6년조
- [정부·공공기관]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제2기 보고서(고대사 분과)
- [단행본]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
이 글은 무령왕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