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⑧ 담로는 어디까지였나 — 대륙 지배설과 그 근거
주장
22담로가 한반도 밖, 곧 중국 요서와 산둥, 일본 열도, 나아가 동남아까지 뻗은 백제의 해외 영토였다는 주장이 방송과 대중서를 통해 널리 퍼졌다. 근거로는 남제서에 보이는 북위와 백제의 전투 기사, 백제 왕이 신하를 왕·후로 봉했다는 기사, 그리고 무령왕릉에서 나온 외래 물품이 제시된다.
반박
두 가지를 나누어야 한다. 백제가 바다를 무대로 삼은 나라였다는 것은 사실이고, 22담로가 바다 건너 식민지였다는 것은 사료가 뒷받침하지 않는다.
첫째, 담로를 적은 양서 자신이 그것을 중국의 군현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군현은 지방 행정 단위다. 왕의 자제와 종족을 보내 다스렸다는 것은 지방 세력의 자리에 왕족을 앉혀 중앙의 힘을 세웠다는 뜻으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실제로 무령왕 대에 왕족과 귀족의 이름이 지방과 함께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둘째, 남제서의 북위·백제 전투 기사는 해석이 갈리는 대목이지 대륙 영토의 증거로 확정된 것이 아니다. 요서경략설은 학계에서 오래 다뤄졌지만 지금까지 그 지역에서 백제의 성곽이나 무덤, 관청 유적이 확인된 바 없다. 반면 담로를 적은 같은 양서는 백제의 위치를 한반도 서남부로 적고 있다.
셋째, 왕이 신하를 왕·후로 봉했다는 기사는 봉건적 영지의 흔적으로 보는 견해와 대외 교섭용 작호로 보는 견해가 함께 있다. 담로의 성격을 지방관으로 볼지 봉지로 볼지도 아직 논쟁 중이다.
그러니 정확한 문장은 이렇다. 22담로는 무령왕 무렵 정비된 것으로 보이는 백제의 지방 지배 조직이고, 그 스물두 곳이 어디였는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백제의 진짜 크기는 영토의 넓이가 아니라 무령왕릉 안에서 확인된다 — 중국 남조식 벽돌무덤에,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으로 짠 관에, 동남아에서 온 유리구슬이 함께 들어 있다. 땅을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얼마나 멀리까지 오갔느냐를 보는 편이 이 나라를 이해하는 데 낫다.
출처
- [단행본] 양서 백제전 / 남제서 백제전
- [기록보존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담로 · 요서경략설
- [단행본] 무령왕릉 — 잊혀진 백제를 깨우다
이 글은 무령왕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