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⑤ 인질인가 파견인가 — 같은 사실을 담는 두 개의 틀

461 · 일본 오사카 하비키노(아스카베 신사)

주장

일본서기는 백제 왕족이 왜에 간 것을 천왕을 모시러 갔다(侍天王)고 적는다. 이를 근거로 백제가 왜에 왕자를 인질로 바친 종속국이었다는 서술이 오래 통용됐다. 개로왕의 아우 곤지, 전지, 풍장이 그 예로 꼽힌다.

반박

같은 사실을 다르게 부르는 문제다. 곤지는 왜에 머무는 동안 다섯 아들을 두었고, 하비키노 일대에 백제계 집단의 근거를 남겼으며, 지금도 그곳 아스카베 신사가 그를 모신다. 인질이 하는 일이 아니다. 백제계 기술자와 학자가 왜로 건너간 흐름의 한가운데 왕족이 있었고, 그 왕족이 현지 세력과 혼인으로 얽히며 백제의 이익을 관리했다고 보는 편이 자료에 맞는다.

결정적인 것은 그다음이다. 곤지는 477년 백제로 돌아와 내신좌평이 되고, 그의 아들 동성왕은 왜에 있다가 백제 왕으로 즉위했으며, 무령왕 역시 그 계통이다. 인질로 보낸 자식들이 돌아와 잇따라 왕이 되는 종속국은 없다.

일본서기의 틀은 8세기 편찬 시점의 필요에서 나왔다. 천황가를 중심에 둔 질서를 과거에 투사해, 이웃 나라의 왕족 파견을 시천왕(모시러 옴)으로, 사신 왕래를 조공으로 적었다. 그러니 이 사서를 읽는 방법은 둘이다. 사실 부분(누가 언제 어디로 갔는가)은 백제 사서에서 온 것으로 보고 쓰되, 관계를 규정하는 술어(모시다·바치다·세워 주다)는 편찬자의 틀로 보고 걷어 내는 것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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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령왕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