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④ 예순둘이라는 숫자 — 우리 사서가 틀린 자리
주장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적었다. 우리 사서가 그렇게 말하니 일본서기가 전하는 곤지의 아들, 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왜가 지어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오래 있었다.
반박
1971년에 나온 지석이 이 문제를 산수로 끝냈다. 523년에 예순둘로 죽었으니 462년생이다. 동성왕은 479년에 즉위해 501년에 죽었으므로, 무령왕이 그 아들이라면 아버지보다 열몇 살 아래이거나 심하면 손위가 되어 버린다. 아들이 될 수 없는 나이다. 반면 일본서기가 전하는 461년 출생은 지석과 한 해 차이로 맞고, 이름 사마까지 지석의 사마왕과 같다.
그렇다고 일본서기가 다 맞는 것도 아니다. 같은 대목에서 임신한 개로왕의 부인을 아우 곤지에게 주어 딸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붙는데, 이것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만들어 주는 설화 장치로 보는 견해가 많다. 확인된 것은 세 가지다. 무령왕은 462년 무렵에 태어났고, 이름은 사마였고, 그 출생이 왜로 가는 뱃길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우리 편의 사서라고 다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쓰였고 백제가 망한 지 오백 년 뒤다. 일본서기는 720년에 쓰였지만 백제 사람들이 남긴 백제신찬을 그대로 인용했다. 사료는 국적으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계통과 연대로 따진다.
출처
- [단행본] 삼국사기 백제본기 무령왕조
- [단행본] 무령왕릉 — 잊혀진 백제를 깨우다
- [박물관·기념관] 국립공주박물관 — 무령왕릉 상설전시 해설
이 글은 무령왕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