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 ④ 예순둘이라는 숫자 — 우리 사서가 틀린 자리

1971 7월 8일 · 충남 공주

주장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무령왕을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고 적었다. 우리 사서가 그렇게 말하니 일본서기가 전하는 곤지의 아들, 섬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왜가 지어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오래 있었다.

반박

1971년에 나온 지석이 이 문제를 산수로 끝냈다. 523년에 예순둘로 죽었으니 462년생이다. 동성왕은 479년에 즉위해 501년에 죽었으므로, 무령왕이 그 아들이라면 아버지보다 열몇 살 아래이거나 심하면 손위가 되어 버린다. 아들이 될 수 없는 나이다. 반면 일본서기가 전하는 461년 출생은 지석과 한 해 차이로 맞고, 이름 사마까지 지석의 사마왕과 같다.

그렇다고 일본서기가 다 맞는 것도 아니다. 같은 대목에서 임신한 개로왕의 부인을 아우 곤지에게 주어 딸려 보냈다는 이야기가 붙는데, 이것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을 만들어 주는 설화 장치로 보는 견해가 많다. 확인된 것은 세 가지다. 무령왕은 462년 무렵에 태어났고, 이름은 사마였고, 그 출생이 왜로 가는 뱃길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얻을 교훈은 우리 편의 사서라고 다 옳지 않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쓰였고 백제가 망한 지 오백 년 뒤다. 일본서기는 720년에 쓰였지만 백제 사람들이 남긴 백제신찬을 그대로 인용했다. 사료는 국적으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계통과 연대로 따진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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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무령왕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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