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파성론 해부 — 자기반성의 기록이 어떻게 민족성 비하로 뒤집혔나

1907 · 한양 (대한제국 학부)

주장

조선은 당파 싸움으로 망했다.

한국인은 정치적으로 서로 싸우기를 좋아하는 민족성을 가졌다. 혈연·학연·지연에 매달리고 배타적이며, 파벌을 만들어 서로의 이익만 다투었다. 그래서 3백 년 동안 당쟁이 그치지 않았고 끝내 나라를 잃었다. 이는 조선인 스스로도 인정한 바다 — 조선의 지식인 이건창이 쓴 당의통략이 그 증거다.

이런 민족은 스스로 근대 국가를 운영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외부의 지도가 필요하다.

(1907년 시데하라 다이라, 한국정쟁지의 논지. 이후 오다 쇼고 등 조선사학회 계열로 이어짐.)

반박

이 주장은 세 단계에서 무너진다.

첫째, 근거로 삼은 문헌을 반대로 읽었다.

시데하라가 근거로 든 당의통략은 1575년 동서분당부터 1755년까지 180년의 붕당 정치를 왕대별로 정리한 책이다. 저자 이건창은 소론계 명문 출신으로, 성리학과 양반 중심 정치를 반성하려는 목적에서 이 책을 썼다. 말미의 원론에서 붕당 발생의 여덟 가지 이유를 짚었는데, 이는 조선 사회의 실상을 스스로 분석한 것이었다.

시데하라는 이 자기반성의 기록을 민족성 비하의 증거로 인용했다. 저술 의도를 정확히 뒤집은 것이다. 나아가 이건창이 분당 이후 정쟁이 확산된 이유를 밝히려 했던 반면, 식민사학은 붕당의 발생 원인 자체로 거슬러 올라가 방향을 반대로 돌렸다.

둘째, 제도의 문제를 민족성의 문제로 바꿔치기했다.

조선에서도 붕당 비판은 있었다. 이익은 붕당론에서 당쟁의 원인을 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지적했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그것을 원하는 사람은 계속 늘어난다는 구조 분석이었다. 황현은 오하기문에서 3백 년을 끌어온 붕당이 문벌 풍습을 가중시켰다고 비난했다.

이 비판들과 당파성론은 결정적으로 다르다. 이익의 분석은 제도가 만든 결과를 지목한다. 제도를 고치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시데하라의 주장은 민족의 본성을 지목한다. 피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지배가 정당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앞의 것은 분석이고 뒤의 것은 인종론이다.

셋째, 시기가 맞지 않는다.

조선의 통치 체제가 가장 심각하게 붕괴한 것은 붕당이 치열하던 시기가 아니라, 붕당이 소멸하고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한 19세기 세도정치기였다. 삼정의 문란, 매관매직, 전국적 민란은 모두 이 시기의 일이다. 반면 붕당 정치가 작동하던 17세기에는 대동법이 확대되고 화폐가 유통됐다.

당쟁이 망국의 원인이라면, 당쟁이 사라진 뒤에 나라가 더 빨리 무너진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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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붕당은 좋은 것이었나

아니다. 이 반박은 붕당을 옹호하지 않는다.

숙종 대의 환국을 거치며 붕당은 상대를 인정하는 공존의 관행을 잃었고, 지면 사약을 받는 정치로 변질됐다. 논쟁의 주제도 정책에서 왕위 계승 줄서기로 옮겨갔다. 학문적 이견이 사문난적이라는 죄목으로 처벌되는 통로가 열려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실재한 폐해다.

현대 학계의 주류 해석은 붕당을 공론 정치의 한 형태로 보되, 17세기 후반 이후의 변질을 함께 지적한다. 붕당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시기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 제도였다.

■ 소수의견과 다른 관점

붕당의 폐해를 더 무겁게 보는 시각도 학계에 존재한다. 공론 정치라는 평가가 붕당의 실제 작동을 지나치게 호의적으로 본다는 비판이다. 또한 훈구와 사림을 뚜렷이 구분되는 두 집단으로 볼 수 있는지, 붕당이 정말 학문적 노선에 따라 갈렸는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혼인과 인맥을 추적해보면 경계가 흐릿하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는 이런 이견들을 지우지 않는다. 다만 그 이견들 역시 제도와 사실을 근거로 다투는 것이지, 민족의 본성을 근거로 삼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파성론과 성격이 다르다.

■ 오늘의 문제 — 왜 이 낡은 주장을 지금 다루는가

당파성론은 1907년의 것이고 학계에서는 오래전에 극복됐다. 그러나 조선을 스스로 근대에 이를 수 없었던 정체된 사회로 그리는 서술은 형태를 바꿔 이어진다.

식민지근대화론은 일제강점기에 근대화가 이뤄졌다고 본다. 이 주장이 성립하려면 그 이전의 조선이 근대에 이를 능력이 없는 사회였어야 한다. 뉴라이트 계열의 대표적 서술은 중화 문명권에 속했던 조선이 서유럽 문명권으로 포섭되어 가는 문명사의 대전환이라는 틀로 식민지기를 설명한다. 이 틀에서 조선은 벗어나야 할 과거로 놓인다.

정확히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뉴라이트 계열이 조선 붕당사를 직접 다룬 저술은 많지 않다. 이들의 논쟁 지점은 주로 근현대사 — 식민지기의 경제 통계, 대한민국 건국의 시점, 북한 서술 — 에 있다. 따라서 뉴라이트가 붕당을 왜곡했다고 뭉뚱그리는 것은 부정확하며, 그런 부정확한 비판은 정당한 문제제기까지 함께 무력화시킨다.

짚어야 할 것은 논리 구조다. 조선 폄하는 그들 주장의 결론이 아니라 전제다. 조선이 무능했어야 식민지배가 수탈이 아니라 전환으로 읽힌다. 그래서 당파성론이 학계에서 폐기된 뒤에도, 조선을 정체된 사회로 그리는 서술은 계속 수요가 있다.

학계 안에서 이 사관에 대한 비판은 축적되어 있다. 윤해동은 뉴라이트의 역사해석이 전통·세계·야만과의 단절을 통해 근대·국가·문명의 순수성을 확인하려 한다는 점에서 비역사적 역사라고 규정했다.

결국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다. 붕당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에 대한 비판과 민족성에 대한 비하를 구별하는 것. 이 선을 그으면 조선을 마음껏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식민사관으로 흡수되지 않는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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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붕당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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