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사의 기념사진 — 34명, 그 후 45년

1979 12월 14일 · 서울(옛 국군보안사령부)

1979년 12월 12일 밤,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최규하 대통령의 재가 없이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 정승화의 부관이 부상당하고,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지키던 김오랑 소령이 반란군의 총격에 숨졌다. 다음 날인 13일, 새 군 수뇌부 인사가 발표된 뒤 전두환이 사령관으로 있던 보안사령부 구내에서 기념사진이 촬영됐다 — 이상규, 최세창, 박희도, 노태우, 전두환, 차규헌, 유학성, 황영시, 김윤호, 정호용, 김기택, 박준병, 이필섭, 권정달, 고명승, 정도영, 장기오, 우국일, 최예섭, 조홍, 송응섭, 장세동, 김택수, 남웅종, 김호영, 신윤희, 최석립, 심재국, 허삼수, 김진영, 허화평, 이상연, 이차군, 백운택 — 이상 34명이다. 뉴스1이 5·18민주화운동 46주년(2026)을 맞아 이들의 행적을 추적한 결과, 34명 가운데 2명(전두환·노태우)은 대통령이 됐고 6명은 국회의원을, 14명은 대장 계급을 지냈다. 2026년 현재 12명이 생존해 있고 18명이 사망했으며 4명은 행방이 확인되지 않는다. 사망한 18명 가운데 13명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 대전현충원 10명(유학성·김윤호·김기택·박준병·정도영·우국일·송응섭·김택수·남웅종·이차군), 서울현충원 3명(최예섭·백운택·이상연). 이 13명이 왜, 어떤 법적 경로로 국립묘지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가 다음 세 편의 주제다.

출처

이 글은 현충원의 역설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지도에서 관련 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