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는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의 문헌 넷을 하나로 묶었다는 것이 이 책 자체의 설명이다. 구성은 이렇다. 첫째 「삼성기(三聖紀)」 — 상편은 신라의 승려 안함로(安含老)가, 하편은 원동중(元董仲)이 지었다고 전한다. 환국·배달국·고조선 세 시대를 여는 세 성인(환인·환웅·단군)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둘째 「단군세기(檀君世紀)」 — 고려 말의 재상 행촌 이암(李嵒, 1297~1364)이 지었다고 전한다. 47대 단군 2096년의 편년체 연대기다. 셋째 「북부여기(北夫餘紀)」 — 고려 말의 학자 복애 범장(范樟)이 지었다고 전한다. 고조선 멸망 이후 고구려 건국까지의 공백을 잇는 기록이다. 넷째 「태백일사(太白逸史)」 — 조선 연산군~중종 때의 문신 일십당 이맥(李陌, 1455~1528)이 지었다고 전한다. '일사(逸史)'는 숨겨진 역사라는 뜻으로, 환국부터 고려까지를 8개의 본기로 재구성하고 천부경·삼일신고 같은 경전류까지 수록한, 분량으로도 내용으로도 가장 방대한 부분이다. 이 넷을 묶은 사람이 계연수(桂延壽, ?~1920)다. 그는 1911년 만주에서 이 네 문헌을 합편해 「환단고기」라 이름 짓고 30부를 간행했다고 전해진다. 감수자는 한말의 유학자이자 항일 지사였던 해학 이기(李沂, 1848~1909)로 기록돼 있다. 계연수는 독립운동 조직과 연이 닿아 있던 인물로, 1920년 만주에서 피살됐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여기서부터가 이 책의 운명을 결정지은 대목이다 — 1911년에 찍었다는 그 30부는 오늘날 단 한 부도 발견되지 않았다. 책이 다시 나타난 것은 68년 뒤인 1979년이다. 계연수의 제자를 자처한 이유립(李裕岦, 1907~1986)이 서울에서 이 책을 공개했고(광오이해사본), 1986년 임승국의 역주본 「한단고기」가 출간되면서 대중적으로 폭발했다. 이 역주본은 당시 수십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환단고기 현상"은 사실상 이 시점에 시작된다. 눈 밝은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을 것이다. 이 전승 계보 자체가 훗날 위서 논쟁의 핵심 전장이 된다. 위서론의 출발점은 간명하다 — "신라·고려·조선의 저자들이 썼다는 원본도, 1911년 초간본도 실물이 없다. 확인 가능한 가장 오래된 실물은 1979년본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성립 연대를 1979년(또는 이유립의 활동기) 이전으로 소급할 물증이 없다." 옹호론의 출발점도 간명하다 — "목숨 걸고 숨겨 전한 금서에 깨끗한 전승 계보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국가가 이런 계통의 사서들을 수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논쟁은 12~14편에서 정면으로 다룬다. 그 전에 먼저, 이 책이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부터 보자.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9천 년 전, 파미르와 바이칼 사이의 어딘가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어떻게 세상에 나왔나 — 다섯 저자, 한 명의 편찬자, 68년의 공백
출처
- [단행본] 환단고기 범례 및 각 권 서지 (광오이해사본)
- [논문] 환단고기 성립 과정 관련 학계 연구 다수 (조인성 등)
이 글은 환단고기, 무엇을 말하는가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