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桓檀古記)만큼 한국 사회에서 기묘한 위치에 있는 책은 드물다.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다. 이 책을 둘러싼 싸움 — "위서다", "아니다, 말살된 상고사의 복원이다" — 도 유명하다. 그런데 정작 이 책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대개 요약된 논쟁만 소비한다. 읽지 않은 책을 놓고 수십 년째 싸우고 있는 셈이다. 이 시리즈는 그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다. 스탠스는 처음부터 분명히 해둔다. 우리는 이 책을 믿으라고 권하지 않는다. 배척하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다만 세 가지를 하려 한다. 첫째, 환단고기가 실제로 기록하고 있는 내용을 — 환국 7대 3301년부터 발해(대진국)의 황제 연호까지 — 가능한 한 충실하고 재미있게 소개한다. 둘째, 이 책을 위서로 보는 강단사학계의 근거와, 그에 반박하는 재야사학계의 논리를 양쪽 모두 성실하게, 각 논거의 강약까지 구분해서 전달한다. 셋째, 진위 논쟁과는 별개로 이 책과 이 서사가 20세기 초 우리 역사에서 실제로 수행한 역할 — 대종교, 그리고 만주 무장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 — 을 기록한다. 읽는 방법에 대해 한 가지 약속을 해두자. 이 시리즈에서 "환단고기는 ~라고 기록한다", "~라고 전한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책의 내용을 전달한다는 뜻이지, 그것이 역사적 사실로 확인됐다는 뜻이 아니다. 반대로 "이것은 실록/비문/논문으로 확인되는 사실이다"라고 쓴 대목은 환단고기 바깥의 독립된 사료나 연구로 검증되는 내용이다. 이 두 층위를 문장 단위로 구분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편집 원칙이다. 어느 쪽으로 판단할지는 온전히 읽는 분의 몫이다. 왜 이런 시리즈가 필요한가. 환단고기가 그리는 세계는 — 사실이든 아니든 — 한국 현대사에 실재하는 힘으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이 서사는 나라를 잃은 시대에 청산리로 향하던 청년들의 가슴에 있었고, 오늘날에는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과 유튜브 알고리즘 속에 있다. 실재하는 힘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제대로 아는 것이 유일한 대처법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 이 책이 그리는 이야기는, 진위를 잠시 접어두고 서사로만 읽어도 대단히 흥미롭다. 기원전 7197년에 세워졌다는 나라, 다섯 행성이 한 줄로 늘어선 밤하늘의 기록, 훈민정음보다 3천6백 년 앞섰다는 문자, 황제 헌원을 무릎 꿇렸다는 전쟁의 신.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프롤로그 — 아무도 읽지 않은 채 싸우는 책
출처
- [단행본] 환단고기 (광오이해사본)
- [단행본] 환단고기 역주본 다수 (임승국 역주 「한단고기」 등)
이 글은 환단고기, 무엇을 말하는가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