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당한 여신의 분노 — 우정이 끝나던 날

-2700 · 우루크

훔바바를 무찌르고 개선한 길가메시에게 사랑과 전쟁의 여신 이슈타르(수메르어로는 인안나)가 청혼한다. 하지만 길가메시는 단호히 거절하며, 이슈타르가 과거에 만났던 연인들이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들어 그녀를 모욕한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이슈타르는 아버지인 하늘의 신 아누에게 달려가 "하늘의 황소"를 내려달라 간청한다 — 자신을 거절한 대가로 우루크를 짓밟을 괴물 황소였다.

하늘의 황소가 도시를 유린하자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힘을 합쳐 이 괴물마저 쓰러뜨린다. 삼나무 숲의 괴물에 이어 하늘의 황소까지 물리친 두 사람은 그야말로 무적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들의 회의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 — 훔바바를 죽이고 신성한 숲을 훼손한 데다, 이제 신이 내린 짐승까지 죽였으니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들은 길가메시가 아니라 엔키두를 택한다.

엔키두는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간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처음엔 자신을 인간 세상으로 이끈 만남 자체를 저주하지만, 이내 태도를 바꿔 오히려 그 삶에 감사한다. 그렇게 여러 날을 앓다가 엔키두는 숨을 거둔다. 서사시는 여기서 이야기의 절반을 넘긴다 — 지금까지가 "둘이 함께한 모험"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홀로 남은 길가메시가 죽음과 마주하는" 이야기다.

【그때 한반도는】 우루크에서 신들이 엔키두의 죽음을 결정하던 이 시절, 한반도의 신석기 사람들 역시 죽음을 특별하게 다뤘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사람 얼굴을 새긴 조개껍데기나 짐승 뼈로 만든 장신구는 이 시기 사람들이 자연물과 영혼에 특별한 힘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원시 신앙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단서로 여겨진다. 신들의 뜻으로 벗을 잃은 길가메시의 이야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향해 조개껍데기에 얼굴을 새기던 한반도 신석기인들의 마음은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같은 방향 —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삶과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 — 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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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길가메시 서사시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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