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처벌을 잘했다"? — 반민특위를 무너뜨린 것은 이승만 정부였다
주장
영화는 이승만이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 오히려 현실적 여건 속에서 할 수 있는 처벌을 했다는 것이다.
반박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운명이 이 주장을 반박하는 가장 직접적인 기록이다. 1948년 제헌국회는 헌법 부칙에 근거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고 반민특위를 발족시켰다 — 노덕술 등 악질 친일 경찰까지 체포하며 활동은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승만 대통령의 대응은 협조가 아니라 방해였다. 그는 특위 활동이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며 반대 담화를 거듭 발표했고, 노덕술 체포 때는 그의 석방을 직접 요구했다. 1949년 6월 6일에는 중부경찰서 경찰이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경대를 무장해제시키고 조사관들을 연행했다 — 이승만은 외신 인터뷰에서 이 습격을 자신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국회프락치사건과 김구 암살이 겹치며 특위는 와해됐고, 공소시효 단축을 거쳐 1년도 안 돼 사실상 해체됐다. 기소 680여 건 중 실형은 소수에 그쳤고 그마저 대부분 곧 풀려났다. 친일 경찰과 관료들은 그대로 이승만 정부의 손발이 됐다 — "pro-Jap이 아니라 pro-job(전직 활용)"이라는 조병옥의 말이 그 논리를 요약한다. 친일 청산의 좌절은 여건의 문제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의 선택이었다는 것, 그것이 기록이 말하는 바다.
출처
- [기록보존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이 글은 「건국전쟁」 팩트체크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