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반세기의 대립이 끝났다.
이제 이 편의 출발 질문으로 돌아가자. 영토를 병합하지 않고도 제국일 수 있는가.
판단하려면 무엇을 제국의 조건으로 볼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이 시리즈가 다룬 열네 제국을 놓고 보면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여러 정치체를 하나의 질서 아래 두는 것. 둘째, 그 질서 안에서 지위가 대등하지 않은 것. 셋째, 중심의 결정이 주변의 운명을 정하는 것. 넷째, 그 관계가 문화와 제도로도 유지되는 것.
영토 병합은 그 조건들을 달성하는 수단이었지 조건 자체는 아니었다. 청은 각 지역을 다른 원리로 다스렸고, 대영제국은 조약으로 권익만 가져간 지역이 많았으며, 무굴이 무너진 자리를 채운 것은 회사의 징세권이었다.
이 기준으로 보면 답은 하나로 나오지 않는다.
제국 쪽으로 기우는 근거는 이렇다. 1898년 이후 획득한 영토가 있고 그중 일부는 지금도 헌법이 온전히 적용되지 않는 지위에 있다. 세계 여러 지역에 기지가 배치되어 있다. 냉전기에 여러 나라의 정권 교체에 관여한 기록이 있고 그중 상당수는 뒤늦게 공개되었다. 기축통화와 금융 체제가 다른 나라의 경제 정책에 제약을 가한다.
제국이 아니라는 쪽의 근거도 있다. 직접 통치하는 해외 영토가 거의 없고, 필리핀처럼 독립 일정을 제시하고 실제로 이행한 사례가 있다. 국내에 팽창을 비판하는 제도적 통로가 있고 그 비판이 정책을 바꾼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이 나라와의 동맹을 스스로 원하는 나라들이 있다 — 앞선 제국들에서는 드문 조건이다.
이 아틀라스는 판정하지 않는다. 대신 판단에 필요한 것들을 시점별로 지도에 올려 두었다. 어느 쪽으로 읽든, 그 판단은 이 시리즈의 앞선 열네 편과 같은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이 편의 요구다.
한 가지만 덧붙인다. 우리는 1905년의 각서에서, 1945년의 30분에서, 1950년의 파병에서, 1965년의 파병에서 이 나라와 만났다. 그 만남은 은혜였다고도, 종속이었다고도 한마디로 말할 수 없다. 결정이 있었고 그 결정에는 이유와 이해관계가 있었으며 결과는 이 반도가 감당했다. 그것을 정확히 적는 일이 감정보다 오래 남는다.
이 지도는 1991년에서 멈춘다. 그 뒤는 아직 역사가 되지 않았고, 진행 중인 일에 대해 이 아틀라스는 사실관계 이상을 적지 않는다.
제국의 조건을 우리가 정한다면, 우리는 그 기준을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