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09년, 흩어져 살던 유목 부족들을 한 사람이 묶었다. 묵특 선우가 세운 흉노는 초원 최초의 제국이자 이후 모든 유목 제국의 원형이 된다.
흉노는 무질서한 무리가 아니었다. 만호와 천호로 나눈 십진 편제를 썼고, 좌현왕과 우현왕이 동서를 나눠 다스리는 구조를 갖췄다. 이 조직 방식은 천 년 뒤 몽골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유목민이 조직 없이 움직였다는 인상은 정주 왕조가 남긴 기록이 만든 것이다.
이들이 왜 남쪽을 압박했는지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초원은 농사가 어려워 곡물과 직물을 밖에서 얻어야 했고, 얻는 방법은 교역이거나 약탈이거나 조공이었다. 중원 왕조가 교역을 막으면 약탈이 늘었다. 만리장성은 침입을 막는 벽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교역을 통제하는 관문이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시기다. 흉노가 하나로 묶이던 그때 중원에서는 진이 무너지고 있었다. 초원에 큰 권력이 서는 시기와 중원이 흔들리는 시기는 자주 겹쳤다 — 둘은 하나의 체계 안에서 서로 반응하는 두 축이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왜 오래도록 뒤처진 것으로 여겼을까? 정착이 곧 발전이라는 생각은 누구의 기준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