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에 들어와 황실의 정원을 불태웠다. 그 협상에서 중재를 자처한 러시아가 대가로 아무르강 북쪽과 연해주를 받았다. 총 한 발 쏘지 않고 한반도의 몇 배에 달하는 땅을 얻은 것이다.
이때부터 러시아는 두만강에서 조선과 국경을 맞댄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이 이 해에 바뀌었다 — 청과 일본에 더해 세 번째 방향의 압력이 생겼고, 이후 반세기 동안 이 세 힘의 경쟁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다.
국경이 생기자 사람이 넘어갔다. 함경도의 농민들이 기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했고, 연해주에 한인 마을이 생겼다. 러시아 당국은 처음에는 이들을 노동력으로 환영했다가 나중에는 관리 대상으로 다루었다. 이 사회가 뒷날 무장 독립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 — 국내에서 활동이 불가능해진 뒤에도 국경 너머에는 사람과 돈과 무기가 있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경쟁은 곧 구체적인 사건으로 나타난다. 1884년 조선과 러시아가 조약을 맺자, 이듬해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며 거문도를 점령했다. 조선의 영토가 조선과 상관없는 두 나라의 경쟁 때문에 점거된 것이다.
1896년에는 왕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옮겼다. 이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지금도 평가가 갈린다.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견해와, 한 외세를 피해 다른 외세에 기댄 것이라는 견해가 맞선다. 다만 그 선택이 놓인 조건은 분명하다 — 어느 쪽에도 기대지 않는 선택지가 실제로 얼마나 있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같은 시기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도 밀고 들어가 칸국들을 병합하고 있었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영국과 경계를 다투는 긴 대치가 이어졌으며, 인도를 지키려는 쪽과 남하하려는 쪽의 경쟁은 두 대륙에 걸쳐 있었다.
국경이 하나 생기는 것으로 한 나라의 처지가 이렇게 달라진다면, 지도 위의 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