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러시아와 일본이 전쟁을 시작했다. 쟁점은 만주와 한반도의 지배권이었다. 전쟁은 주로 만주와 한반도, 그 앞바다에서 벌어졌다.
대한제국은 개전 직후 중립을 선언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본군이 서울에 들어왔고, 곧 협정을 강요해 군사적 필요에 따라 영토를 쓸 수 있게 했다. 전장이 된 나라가 교전국도 아니고 협상 참여국도 아니었다.
1905년 미국의 포츠머스에서 강화 조약이 맺어졌다. 그 안에 일본이 한반도에서 갖는 우월한 권익을 러시아가 인정한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같은 해 7월에는 미국과 일본 사이에 서로의 세력권을 양해하는 합의가 있었고, 8월에는 영국과 일본이 동맹을 갱신하며 같은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해 11월 을사늑약이 강요된다. 순서를 보면 알 수 있다 — 조약의 체결에 앞서 이미 국제적 승인이 갖추어져 있었다.
이 대목은 두 가지를 동시에 말한다. 하나는, 한 나라의 운명이 그 나라가 참여하지 않은 전쟁과 그 나라에서 열리지 않은 회담으로 정해질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선택은 있었고 그 선택들이 이후를 갈랐다는 것. 어느 한쪽만 말하면 절반이 된다. 조건을 말하지 않으면 당한 쪽에 모든 책임이 돌아가고, 선택을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실제로 한 일이 사라진다.
러시아 쪽에서 보면 이 패배는 안으로 돌아왔다. 유럽의 제국이 아시아의 나라에 졌다는 소식은 세계 여러 식민지에서 다르게 읽혔고, 러시아 안에서는 그해 대규모 소요로 이어졌다. 제한적인 의회가 열리지만 개혁은 오래가지 못하고, 12년 뒤 제국은 끝난다.
1917년 이후 이 지도는 멈춘다. 그러나 연해주의 한인 사회에는 뒷이야기가 있다. 1921년 러시아 영내에서 한인 무장 부대들 사이에 큰 충돌이 벌어졌고, 1937년에는 그곳에 살던 한인 17만여 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했다. 1860년의 국경선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그렇게 이어졌다.
제국들이 경쟁하는 자리에 놓인 나라에게 「선택」이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결과만 놓고 평가해도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