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되는 학살에 대하여

1915 · 시리아 데이르에조르

1915년 4월 24일, 이스탄불에서 아르메니아인 지식인과 지도자들이 한꺼번에 검거되었다. 곧이어 동부 지역의 아르메니아인 주민 전체를 사막 방향으로 이주시키는 조치가 시행되었다. 이동 중의 살해와 굶주림과 질병으로 희생된 사람은 통상 80만에서 150만 사이로 추정된다. 같은 시기 그리스인과 아시리아인 공동체도 큰 피해를 입었다.

오늘날 제노사이드 연구자 대다수와 30개국이 넘는 나라가 이를 제노사이드로 규정한다. 튀르키예 정부는 이를 거부한다. 전시의 혼란 속에서 양쪽 모두 희생되었고 계획적 절멸은 없었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며, 학살을 인정하는 발언이 처벌 대상이 된 시기도 있었다.

이 아틀라스에는 원칙이 하나 있다. 확정된 사실의 부정에는 중립하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나 강제동원을 두고 「양쪽 주장이 있다」고 적지 않는 것과 같은 원칙이다.

그 원칙은 상대를 가려서 적용할 수 없다. 우리가 일본의 부정을 비판하는 근거가 「그것이 우리 일이기 때문」이라면 그것은 원칙이 아니라 편의다. 다른 나라의 부정 앞에서 침묵하는 순간, 우리 쪽 요구도 이해관계의 주장으로 내려앉는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오늘의 튀르키예 사람들이 100년 전의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책임을 묻는 일과 후손을 비난하는 일은 다르다. 실제로 튀르키예 안에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온 역사학자와 언론인이 있고, 그 때문에 큰 대가를 치른 사람도 있다.

요구되는 것은 사죄의 말보다 먼저 기록의 인정이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그대로 적을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되지 않는 한 그 자리에는 계속 두 개의 이야기가 남는다.

다른 나라의 부정에 침묵하면서 우리 쪽의 부정만 문제 삼을 때, 우리의 요구는 어떤 근거 위에 서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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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스만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