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나라」라는 말은 언제 생겼을까

1950 · 평안남도 군우리

한국과 튀르키예는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부른다. 그 말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를 따라가 보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조선과 오스만 사이에 국가 차원의 외교 관계나 교류 기록은 사실상 없다. 두 나라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알지 못한 채 각자의 600년과 500년을 보냈다.

간접적인 접점은 있었다. 1402년 조선에서 만들어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유럽까지 그려져 있다. 그 지리 지식은 이슬람 세계의 지도학이 원을 거쳐 전해진 것이다. 조선이 세계를 그린 방식 안에 이슬람 세계의 축적이 들어 있었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그 지도가 만들어진 바로 그 해에 앙카라에서 오스만이 티무르에게 무너졌다.

돌궐과 고구려를 잇는 이야기도 자주 인용된다. 6~7세기에 두 세력이 사신을 주고받거나 부딪친 기록은 남아 있다. 그러나 그것을 형제 관계의 근거로 삼는 것은 무리다. 돌궐 계통의 집단이 서쪽으로 이동해 아나톨리아에 이르기까지 500년이 넘게 걸렸고, 그 사이 수많은 집단이 섞였다. 언어 계통이 이어진다는 것과 한 민족이 이동했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두 사회가 실제로 만난 것은 1950년이다. 튀르키예는 한국전쟁에 여단 규모의 병력을 보냈고, 교대 파병까지 합쳐 연인원 2만 명이 넘게 참전했다. 전사자는 집계에 따라 다르지만 900명 안팎이다. 1950년 11월 군우리 부근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입으면서도 후퇴하는 부대를 엄호했고, 이듬해 용인 김량장 전투에서는 승리했다. 참전의 배경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이라는 튀르키예의 외교적 목표도 있었다 — 그것이 희생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형제라는 말이 널리 퍼진 것은 그보다 한참 뒤다. 2002년 월드컵에서 두 나라가 맞붙었을 때 한국 관중석에 거대한 튀르키예 국기가 펼쳐졌고, 그 장면이 양쪽에서 크게 보도되면서 이 서사가 대중적으로 굳어졌다.

그러니까 형제의 나라는 1,300년 된 이야기가 아니라 70년 된 이야기이고, 널리 퍼진 것은 20여 년 되었다. 이것은 그 말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다. 함께 겪은 일이 있고 그것을 기억하는 방식이 있다면, 그 관계는 실재한다. 다만 그 실재가 오래된 혈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선택에서 온다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오래되었다고 믿어야만 소중한 관계가 되는 것일까?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어 갈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관련 콘텐츠

이 글은 오스만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해방과 전쟁, 산업화 지도에서 관련 지역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