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기 말 아나톨리아에는 튀르크계 소국이 스무 개 넘게 흩어져 있었다. 셀주크의 지배가 무너지고 몽골계 일 칸국의 압력이 느슨해진 자리에서 저마다 독립한 세력들이었다. 오스만은 그중 하나였고, 크기로 보면 중간에도 못 미쳤다.
그런데 이 집단만 제국이 되었다. 왜였을까.
첫째는 자리다. 오스만은 비잔티움과 맞닿은 서북쪽 변경에 있었다. 변경은 위험한 자리이지만 동시에 사람이 모이는 자리이기도 했다. 싸울 뜻이 있는 자, 땅을 원하는 자, 다른 소국에서 밀려난 자가 국경으로 흘러들었다. 내륙의 소국들이 서로를 상대로 소모전을 벌이는 동안 오스만은 바깥을 향해 커질 수 있었다.
둘째는 흡수의 방식이다. 오스만은 정복한 쪽의 사람을 적으로만 두지 않았다. 비잔티움의 지방 영주가 자리를 유지한 채 오스만 편에 서는 일이 흔했고, 기독교도 기병이 오스만 군대에서 봉토를 받았다. 초기의 혼인 관계도 그랬다. 종교로 편을 가르는 원칙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실용이 앞섰다.
셋째는 상속이다. 초원의 여러 세력이 지도자가 죽을 때마다 갈라진 것과 달리, 오스만은 한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굳어졌다. 뒷날 이 원칙은 즉위한 술탄이 형제를 죽이는 관행으로까지 굳어진다 — 분열을 막는 대가가 그것이었다.
다만 이 설명들은 모두 결과를 알고 난 뒤의 설명이다. 같은 조건에 있던 다른 소국도 여럿이었고, 오스만 역시 1402년에 한 번 무너져 11년을 흩어졌다. 우리는 살아남은 쪽의 조건만 이유로 정리하는 데 익숙하다.
한 세력이 커진 이유를 설명할 때, 우리는 그 세력의 무엇을 보고 무엇을 지나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