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넓었을 때 가장 약했다

1707 · 인도 아우랑가바드

1707년 88세의 황제가 원정지에서 죽었다. 그가 남긴 제국은 지도상 최대였다.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이 그의 이름 아래 있었다.

같은 시점에 국고는 비어 있었고, 지방 총독들은 세금을 자기 것으로 쓰며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있었다. 이후 12년 동안 황제가 여섯 번 바뀐다.

무엇이 어긋났을까.

첫째는 남부의 전쟁이다. 데칸의 술탄국들을 병합하기 위해 26년을 전장에서 보냈다. 성은 하나씩 함락되었지만 산악에서 일어난 마라타 세력은 잡히지 않았다. 정면 전투 대신 요새와 기습으로 버텼고, 지도자를 처형해도 조직이 무너지지 않았다. 병합한 영토를 지키는 비용이 그 영토에서 나오는 수입보다 커진 순간부터 확장은 이익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둘째는 지분의 회수다. 1679년 비무슬림 인두세가 부활했다. 재정과 종교 양쪽의 이유가 함께 작용했겠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 100년 넘게 제국을 함께 떠받쳐 온 라지푸트를 비롯한 협력 세력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원 파괴 사례도 이 시기에 여럿 기록되어 있다. 다만 같은 황제가 다른 사원에는 토지를 기부한 기록도 남아 있어서, 일관된 종교 정책이라기보다 정치적 판단이 사안마다 달랐다고 보는 편이 실제에 가깝다.

이 황제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는 오늘날 인도에서 가장 뜨겁게 다투어지는 주제 중 하나다. 관용의 시대를 끝낸 광신자로 그리는 서술과, 검소하고 유능한 통치자로 복권하려는 서술이 맞선다. 이 아틀라스는 어느 쪽 서사에도 서지 않는다. 다만 사료로 확인되는 것은 적는다 — 인두세는 부활했고, 사원은 일부 파괴되었고, 협력 세력은 이탈했고, 제국은 그의 사후 급격히 무너졌다.

제국이 가장 넓어진 순간과 가장 약해진 순간이 같을 수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성공이라 불러야 할까?

관련 콘텐츠

이 글은 무굴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