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처음으로 없앤 나라는 조선이 아니었다.
류큐 왕국은 500년 가까이 독자적인 왕조를 유지하며 청과 일본 양쪽에 사대하고 있었다. 청 편에서 본 그 양속 관계다 — 하나의 나라가 두 종주국을 두는 상태가 실제로 가능했고, 양쪽 모두 그것을 알면서 묵인했다.
1872년 일본이 류큐를 자국의 번으로 편입한다고 일방 선언했고, 1879년에는 왕을 도쿄로 데려가고 현을 설치했다. 청이 항의했으나 실효적 대응은 없었다.
비슷한 시기 북쪽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다. 홋카이도는 아이누의 땅이었다. 1869년 개척사가 설치되면서 토지와 어로권이 박탈되었고, 언어와 관습이 금지되었으며, 이주민이 대규모로 들어왔다. 1899년의 법은 아이누를 「구토인」이라 부르며 보호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 대영제국 편의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본 것과 같은 형식이다.
이 두 사례가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근대 국민국가는 자기 경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누가 국민인가」를 국가가 정하고, 그 밖에 있던 사람들은 편입되거나 배제된다. 류큐와 홋카이도는 그 첫 실험장이었고, 거기서 쓰인 방식 — 언어 금지, 관습 개조, 이름의 변경, 이주민 정착 — 이 곧 밖으로 확장된다.
대영제국 편에서 우리는 제국의 첫 실험장이 바로 옆 섬 아일랜드였다는 것을 보았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배운 방법이 가장 먼 곳에서 쓰였다. 여기서도 순서는 같다.
오키나와는 그 뒤에도 여러 번 다른 대가를 치른다. 1945년 지상전에서 주민의 4분의 1가량이 희생되었고, 전후에는 오랫동안 미군 통치 아래 있다가 1972년에야 일본으로 반환되었다. 지금도 이 섬에 주일 미군 시설의 상당 부분이 집중되어 있다.
제국의 경계 안에 가장 먼저 편입된 사람들은, 그 제국이 무너진 뒤에 어디에 서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