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년 미국 함대가 에도만에 나타났다. 이듬해 화친조약이, 4년 뒤에는 영사재판권을 인정하고 관세를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조약이 맺어졌다. 15년 전 청이 아편전쟁 뒤에 맺은 것과 같은 계열이었다.
이 불평등을 되돌리는 것이 이후 반세기 일본 외교의 최대 목표가 된다. 실제로 관세자주권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1911년이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이 이 편의 첫 번째 축이다.
1875년 일본이 군함을 보내 강화도 앞바다에서 포격했다. 이듬해 조약이 강요되었다. 그 안에는 개항장에서 일본인을 조선 법으로 재판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관세에 관한 규정은 빠져 있었다. 자기가 강요당한 형식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조약 첫머리에는 조선이 자주국이라고 적혀 있었다. 조선을 위한 문장이 아니었다. 청의 종주권을 부정해 두려는 포석이었고, 실제로 19년 뒤 전쟁의 명분이 된다. 조약의 문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문장만 봐서는 알 수 없다.
러시아 편에서 우리는 같은 구조를 보았다. 몽골에 세금을 바치던 공국이 240년 뒤 벗어나, 70년 만에 자신을 지배하던 칸국의 조각들을 삼켰다. 거기서 물었던 질문이 여기서 다시 나온다 — 당한 경험은 자제의 근거가 될까, 정당화의 근거가 될까.
일본에서 실제로 쓰인 논리는 후자에 가까웠다. 문명국이 되지 못하면 당한다, 그러니 우리가 먼저 문명국이 되어 이웃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논리는 서구가 아시아를 향해 쓰던 것과 형식이 같았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메이지 정부가 8년 만에 봉건 영지를 없애고 중앙집권 국가를 세운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다. 러시아 편의 표트르, 오스만의 탄지마트, 청의 개혁과 같은 계열의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고, 다른 점은 그것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그 성공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이후를 비판할 수는 없다. 물어야 할 것은 성공 여부가 아니라 그 힘이 어디로 향했는가다.
당한 경험이 있는 나라가 같은 일을 할 때, 그 경험은 무엇이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