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5년 일어난 내란은 8년을 끌었다. 진압한 뒤에도 지방의 군사 지휘관들이 각자의 영역을 세습하며 사실상 독립했고, 중앙은 그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50년의 할거 끝에 907년 당이 무너진다.
그러나 이 제국이 만든 것들은 남았다.
율령이라 불리는 법전 체계가 그렇다. 관제와 형법과 토지·조세 제도를 하나로 묶은 이 틀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전해져 각국 국가 운영의 기본형이 되었다. 지배하지 않은 지역까지 제도가 퍼진 것이며, 각국은 그것을 그대로 쓴 것이 아니라 자기 조건에 맞게 고쳐 썼다.
한자와 그 문어도 남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글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그 위에서 불교 경전과 유교 경전, 역사서와 시문이 오갔다. 오늘날 이 지역을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어 말할 수 있는 근거의 상당 부분이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그리고 책봉과 조공이라는 국가 간 관계의 문법이 남았다. 이 문법은 이후 1,000년 동안 동아시아 국제 관계의 형식이 된다 — 청 편에서 본 대로, 같은 형식 안에 전혀 다른 실질들이 담겼다.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이 시기의 역사를 어느 나라의 것으로 볼 것인가는 오늘날 국가 사이의 쟁점이기도 하다. 특히 고구려와 발해를 두고 그렇다. 이 아틀라스는 현재의 국경으로 과거를 나누는 방식을 쓰지 않는다. 고구려와 발해는 그 시대에 독자적인 국가였고, 그 사람들과 제도와 문화가 이후 한반도의 역사로 이어진 부분이 분명히 있으며, 동시에 만주라는 공간의 역사로 이어진 부분도 있다. 하나의 국적을 붙이려는 시도는 어느 쪽에서 나오든 그 시대의 실제를 좁힌다.
907년의 한반도는 후삼국의 혼란기였다. 11년 뒤 고려가 서고, 19년 뒤 발해가 거란에 무너지며 그 유민 상당수가 고려로 넘어온다. 당의 붕괴와 한반도의 분열, 초원의 새 세력 등장이 같은 시기에 겹쳤다 — 동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판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제국이 사라진 뒤에도 그 제국이 만든 제도와 문자와 관계의 형식이 남았다면, 그 유산을 물려받은 나라들은 그 제국의 무엇을 함께 물려받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