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가 불탄 뒤에도 남은 것

1258 · 이라크 바그다드

1258년 몽골 군대가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마지막 칼리파를 처형했다. 500년을 이어온 계보가 끊겼고 도서관이 불탔다. 티그리스강이 먹물로 검게 물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과장이겠지만 그 상실이 어떻게 기억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정치적 통일은 그보다 300년 앞서 끝나 있었다. 945년 군사 세력이 바그다드를 장악한 뒤 칼리파는 자리만 지켰고, 이집트와 이베리아에서는 각각 다른 칼리파가 등장해 셋이 동시에 존재했다. 권위와 권력이 분리된 채 공존한 이 구조는 다른 문명권에서 보기 드문 형태다.

그런데 정치가 갈라진 뒤에도 문화와 교역의 그물은 오히려 더 촘촘해졌다. 모로코 출신 여행가가 30년에 걸쳐 서아프리카부터 중국까지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공통의 언어와 법과 관습 덕분이었다. 제국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국경이 아니라 그물이었다.

지식도 계속 움직였다. 아랍어로 보존된 그리스 학문이 이베리아와 시칠리아의 번역소를 거쳐 라틴어가 되어 유럽으로 건너갔고, 르네상스의 재료가 되었다. 그리스에서 아랍어로, 다시 라틴어로 — 여러 손을 거친 것이다.

2년 뒤 몽골의 서진은 이집트의 맘루크에 막혀 멈춘다. 그 군대를 다음 편에서 반대편에서 보게 된다.

하나의 지식이나 문명을 누구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려받은 것과 만들어 낸 것의 경계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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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슬람 칼리파국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