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토판 도서관, 그리고 1872년의 강연장

-650 · 이라크 니네베

기원전 7세기 중반, 아시리아의 마지막 대왕이 제국 곳곳에서 점토판을 모았다. 오래된 도시의 신전과 개인의 서고에서 가져오거나 베끼게 했고, 수도의 왕궁에 분류해 보관했다. 문학과 주술, 천문과 의학, 점술과 어휘집이 있었다.

세계 최초의 체계적인 도서관으로 불린다. 발굴된 점토판이 3만 점이 넘는다.

같은 왕이 엘람의 수도를 파괴하고 신전과 왕릉까지 부수며 소금을 뿌렸다고 비문에 적은 사람이다. 같은 시기 형과 4년에 걸친 내전을 치렀다. 그는 자신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고 자랑했는데, 당시 왕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잔혹한 제국」 한 마디로 덮으면 이 도서관이 사라진다. 두 가지가 같은 사람에게 있었다.

그리고 2,500년 뒤의 일이 있다.

184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발굴이 시작되었다. 왕궁의 부조와 거대한 인두유익수 상, 그리고 점토판이 쏟아져 나와 유럽의 박물관으로 실려 갔다. 아무도 읽지 못하는 쐐기문자였고, 해독은 수십 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1872년 한 연구자가 점토판을 정리하다 낯선 이야기를 만났다. 큰 홍수가 났고, 한 사람이 배를 지어 살아남았으며, 새를 날려 물이 빠졌는지 확인하는 대목이 있었다. 성서보다 훨씬 오래된 기록이었다. 그는 흥분해서 방 안을 뛰어다니며 옷을 벗어 던졌다고 전한다.

그 점토판이 「길가메시 서사시」였다.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문학이며,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시리아의 왕이 그것을 베껴 보관해 두었기 때문이다.

세계사 루트의 「길가메시의 여정」이 그 이야기를 지도로 따라간다. 이 시리즈의 첫 루트 중 하나가 이 편의 도서관에서 나온 셈이다.

제국은 파괴하면서 동시에 보존한다. 정복지의 지식을 모으는 것도 지배의 한 형태였고, 그 수집이 없었다면 사라졌을 것들이 남았다. 무굴의 궁정 도서관도, 바그다드의 번역 운동도, 대영박물관의 수집품도 같은 자리에 놓인다 — 그중 어떤 것을 어디에 돌려주어야 하는가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파괴한 자가 보존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야 할까? 그리고 그것을 지금 누가 가지고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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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시리아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