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리아 왕들의 비문에는 정복지에서 한 일이 상세히 적혀 있다. 성벽에 가죽을 걸었다, 기둥을 세웠다, 도시를 불태웠다는 대목이 반복된다. 왕궁 벽에는 공성전과 처형 장면이 부조로 새겨졌다.
주목할 것은 이 기록이 남았다는 사실 자체다. 다른 제국들도 잔혹한 일을 했지만 그것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기록에 남긴 경우는 드물다. 아시리아는 그것을 통치의 도구로 썼다.
논리는 이렇다. 저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널리 알리면, 다음 도시는 싸우지 않고 문을 연다. 공포는 군대를 움직이는 비용을 줄인다. 실제로 사절을 보내 항복을 권하면서 저항한 도시의 사례를 들려주는 장면이 부조에 남아 있다.
동시에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 이 기록들은 왕의 업적을 남기기 위한 선전물이다. 숫자는 과장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패배는 대개 적히지 않았으며, 물러선 것을 승리로 적은 경우도 있다.
기원전 701년의 유다 원정이 그 예다. 아시리아 기록은 46개 도시를 함락하고 20만 명 넘게 끌어냈으며 유다 왕을 새장 속의 새처럼 가두었다고 적었다. 그런데 예루살렘을 함락했다는 말은 없다. 성서는 천사가 아시리아 진영을 쳤다고 적었다. 두 기록 모두 자기 쪽에 유리하게 쓰였고, 실제로는 조공을 받고 물러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한 사건에 두 개의 기록이 남았을 때 무엇을 믿을 것인가는 역사학의 오래된 문제다. 답은 대개 「어느 쪽도 그대로 믿지 않고, 두 기록이 각각 무엇을 위해 쓰였는지를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가 있다. 잔혹함을 자랑스럽게 기록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제국에 대해 많이 안다. 기록하지 않은 제국의 잔혹함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아시리아가 유난히 잔혹했다기보다, 유난히 자세히 적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그 잔혹함을 덜어 주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과거를 평가할 때 남은 기록의 양에 얼마나 좌우되는지를 보여준다.
기록을 남긴 쪽이 더 나쁘게 기억된다면, 우리가 아는 역사는 무엇에 대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