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722년 3년의 포위 끝에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이스라엘 왕국이 끝났다. 아시리아 비문은 2만 7천여 명을 옮겼다고 적었고, 그 자리에는 다른 지역에서 데려온 사람들을 채웠다.
이 정책의 논리는 냉정하다. 공동체를 흩어 놓으면 반란을 조직할 기반이 사라진다. 옮겨진 사람들은 낯선 땅에서 아는 사람도 연고도 없이 제국의 행정에 의존하게 된다. 그리고 노동력을 필요한 곳에 재배치할 수 있다. 잔혹함의 표현이 아니라 계산된 통치 기술이었다.
규모는 컸다. 제국 전체에서 400년 동안 옮겨진 사람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는 추정이 있으나 편차가 크며, 이 아틀라스는 특정 수치를 확정하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하나 있었다. 여러 지역 사람들이 뒤섞이면서 서로 통할 언어가 필요해졌고, 그 자리를 아람어가 채웠다. 정복당한 소국들의 언어가 제국의 실무 언어가 된 것이다. 이후 1,000년 넘게 서아시아의 공용어로 쓰인다.
제국이 남기는 것은 대개 그 제국이 의도한 것이 아니다.
옮겨진 이스라엘 사람들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뒷날 「잃어버린 열 부족」이라는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 이야기는 2,000년 넘게 여러 지역에서 자기 기원을 설명하는 데 쓰였다 — 사라진 사람들이 서사가 되어 남은 셈이다.
남쪽의 유다는 조공을 바치며 살아남았다. 북쪽 왕국이 사라진 뒤 그 전승과 사람들이 남쪽으로 흘러들었고, 그 축적 위에서 뒷날 성서의 상당 부분이 정리된다. 한 왕국의 멸망이 다른 왕국의 기록을 두껍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이 방식은 계속 물려받는다. 아시리아를 무너뜨린 신바빌로니아가 25년 뒤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주민을 바빌론으로 옮기는데, 그 방식은 아시리아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무너뜨린 쪽이 무너진 쪽의 방법을 이어받는 일은 이 시리즈에서 열여섯 번 반복된다.
오스만 편에서 우리는 발칸의 인구를 옮긴 정책을 보았고, 러시아 편에서는 캅카스 정복 뒤의 이주를, 대영제국 편에서는 1947년의 1천만 명을 보았다. 사람을 옮기는 것은 제국의 오래된 도구다.
국경보다 사람을 옮기는 것이 쉬웠던 시대와, 사람보다 국경을 긋는 것이 쉬웠던 시대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상처를 남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