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권5 월명사도솔가조. 월명사(月明師)가 죽은 누이를 위해 재(齋)를 올리며 향가를 지어 제사하는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 지전(紙錢)을 날려 서쪽으로 사라지게 했다고 한다.
生死路隱 — 생사의 길은 此矣有阿米次肹伊遣 — 여기 있으매 머뭇거리고 吾隱去內如辭叱都 — 나는 간다는 말도 毛如云遣去內尼叱古 — 못다 이르고 갔는가
於內秋察早隱風未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一等隱枝良出古 — 한 가지에 나고서도 去奴隱處毛冬乎丁 — 가는 곳 모르는구나
阿也 彌陀刹良逢乎吾 — 아으, 미타찰에서 만날 나 道修良待是古如 — 도 닦아 기다리겠노라
【한국 서정시의 정점】 향가 25수 가운데 문학적 완성도가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10구체 사뇌가의 3장 구조가 그대로 드러난다.
1장(1~4구)은 죽음 앞의 당혹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바로 여기 있는데, 누이는 "나는 간다"는 말조차 못 하고 떠났다. 예고 없는 이별이었다는 뜻이다.
2장(5~8구)은 비유다. 이른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잎 — 제철보다 일찍 죽었음을 암시한다. "한 가지에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른다"에서 한 가지는 같은 부모, 잎은 남매다. 죽음에 의한 이별이라는 추상을 낙엽이라는 구체로 옮긴 이 대목이 이 노래의 핵심이다. 바람은 자연현상이면서 동시에 생사를 가르는 초자연적 힘이라는 중의(重義)로 읽힌다.
3장(9~10구)은 전환이다. "아으"라는 감탄사로 시작하는 낙구에서 시상이 뒤집힌다. 슬픔에 머무르지 않고 미타찰(彌陀刹,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서 다시 만나겠다는 다짐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재회를 위해 "도 닦아 기다리겠다"고 한다. 슬픔의 처리 방식이 종교적 수행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왜 뛰어난가】 이 작품의 성취는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깊이를 잃지 않는다는 데 있다. 통곡하지 않는다. 대신 낙엽이라는 이미지 하나로 요절과 이별과 무상을 동시에 말한다.
구조도 정교하다. 1장이 묻고(갔는가), 2장이 비유하고, 3장이 답한다. 물음에서 시작해 다짐으로 닫히는 이 흐름이 10구체 사뇌가의 전형적 구성으로 꼽힌다. 특히 낙구의 감탄사가 정서의 전환점 역할을 하는 방식은 이후 시조의 종장 첫머리(3음절 감탄어)로 이어진다는 견해가 있다.
사상적으로는 아미타신앙, 곧 정토사상의 색채가 짙다. 죽은 이가 극락에 왕생하기를 비는 재의(齋儀)에서 불린 노래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전이 서쪽으로 날아갔다는 이적(異蹟)이 함께 전하므로, 순수한 불교 의례가로만 보기는 어렵고 주술적 요소가 겹쳐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월명사라는 사람】 월명사는 「제망매가」와 「도솔가」 두 편을 남긴 향가 작가다. 『삼국유사』는 그가 사천왕사(四天王寺)에 살았고 피리를 잘 불어, 달밤에 피리를 불며 문 앞 큰길을 지나가면 달이 그를 위해 가기를 멈췄다고 전한다. 그래서 그 길을 월명리(月明里)라 불렀다고 한다.
스스로는 "저는 국선(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어 향가만 알 뿐 범패(梵唄)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승려이면서 화랑 집단의 낭도였다는 뜻이다. 향가의 담당층이 승려와 화랑 양쪽에 걸쳐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경덕왕 19년(760)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간 사라지지 않는 변괴가 일어났을 때, 왕이 그를 불러 노래를 짓게 했다. 그것이 「도솔가」다. 노래를 부르자 변괴가 사라졌다고 한다. 주술사로서의 면모다.
【그때 신라는】 경덕왕대(742~765)는 통일신라 문화의 절정기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세워지고(751), 성덕대왕신종이 주조되기 시작했으며, 관제와 지명이 대대적으로 한화(漢化)됐다. 동시에 왕권과 진골 귀족의 긴장이 높아지던 시기이기도 하다. 「제망매가」·「도솔가」·「찬기파랑가」·「안민가」·「도천수관음가」가 모두 이 무렵 작품이라는 사실은, 향가의 전성기가 곧 신라 문화의 전성기와 겹친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