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화가 — 소 끌던 노인이 벼랑을 오른 이유

720 · 강릉 가는 길의 바닷가 벼랑

『삼국유사』 권2 수로부인조. 성덕왕 때 순정공(純貞公)이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길이었다.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는데, 곁에 병풍처럼 선 돌벼랑이 천 길 높이로 바다를 굽어보고 있었고 그 꼭대기에 철쭉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水路)가 좌우에게 물었다. "누가 저 꽃을 꺾어다 주겠는가?" 종자들이 답했다. "사람의 발자취가 이를 수 없는 곳입니다." 모두 못 하겠다고 했다.

그때 암소를 끌고 지나가던 늙은이가 있었다. 그는 부인의 말을 듣고 벼랑을 올라 꽃을 꺾어 왔고, 노래를 지어 함께 바쳤다.

紫布岩乎邊希 — 자줏빛 바위 가에 執音乎手母牛放敎遣 — 잡고 있는 암소 놓게 하시고 吾肹不喩慚肹伊賜等 —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花肹折叱可獻乎理音如 —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네 줄에 담긴 것】 짧지만 구조가 정교하다. 1구는 장소, 2구는 노인이 하려는 행위(소를 놓아둠), 3구는 조건(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4구는 헌화다. 조건절이 한가운데 놓인 것이 핵심이다.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 이 한마디에 신분 차이가 통째로 들어 있다. 소 끄는 늙은이가 태수의 부인에게 꽃을 바치는 상황이고, 노인 스스로 그 격차를 알고 있다. 그런데 그는 물러서지 않고 조건을 건다. 당신이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이라고. 청을 들어주는 쪽이 오히려 상대에게 조건을 다는 구조다.

아무도 오르지 못한다고 한 벼랑을 노인 혼자 올라갔다는 설정도 예사롭지 않다. 젊은 종자들이 못 한 일을 늙은이가 해낸다.

【견우노옹은 누구인가】 그래서 이 노인의 정체가 논쟁거리가 됐다. 크게 세 갈래다.

① 선승(禪僧)설 — 신분을 감춘 도승으로 본다. 벼랑을 오르는 비범함과 초연한 태도가 근거다. ② 농민설 — 문면 그대로 소를 끄는 평범한 노인으로 본다. 이 경우 노래의 초점은 신분을 넘은 순수한 마음이 된다. ③ 신적 인물설 — 산신이나 지역 신격의 화신으로 본다. 인간이 이를 수 없는 곳에 오르는 존재라는 점에서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노래의 성격이 달라진다. ①·③이면 신이담이고, ②면 민요적 서정시다. 학계에서는 「헌화가」를 민요계 향가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배경설화의 초자연적 색채까지 고려하면 단순한 민요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 — 해가】 「헌화가」 다음에 더 유명한 사건이 이어진다. 일행이 이틀을 더 가서 임해정에서 점심을 먹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부인을 끌고 바다로 들어가 버렸다. 공이 발을 굴렀으나 방법이 없었다.

한 노인이 말했다. "옛사람 말에 여러 입은 쇠도 녹인다 했으니, 바다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경내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며 막대로 언덕을 치면 부인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로 하자 용이 부인을 받들고 나와 바쳤다.

그때 부른 노래가 「해가(海歌)」다. "거북아 거북아 수로를 내놓아라 / 남의 아내 앗아간 죄 얼마나 크냐 / 네 만일 거스르고 내놓지 않으면 / 그물로 잡아 구워 먹으리라." 700년 전 김해 구지봉에서 부른 「구지가」와 구조가 판박이다. 무엇을 내놓으라 하고, 안 내놓으면 구워 먹겠다고 위협한다.

공교롭게도 구출 대상의 이름이 수로부인(水路)이고 가야 시조가 수로왕(首露)이다. 한자는 다르나 음이 같다. 우연인지 전승의 흔적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의 주술 양식이 700년을 건너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수로부인이라는 인물】 『삼국유사』는 수로부인을 두고 "용모와 자색이 세상에 뛰어나 깊은 산이나 큰 못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신물(神物)에게 붙들렸다"고 적었다.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라는 것이다.

이 대목을 근거로 수로부인을 단순한 미인이 아니라 무녀(巫女)나 신적 존재로 읽는 해석이 있다. 신물이 반복해 데려간다는 것은 그녀가 신의 세계와 통하는 인물이었음을 뜻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를 태수 부임 행렬이라는 정치적 행위와 지역 세력의 갈등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읽는 견해도 있다.

【그때 신라는】 성덕왕대(702~737)는 통일신라의 안정기다. 당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정전(丁田)이 지급되는 등 체제가 정비되던 시기다. 태수가 임지로 부임하며 벼랑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소를 끄는 노인이 지나가고, 바닷가에서 백성을 모아 노래를 부른다 — 「헌화가」와 「해가」의 배경설화는 그 안정기의 지방 풍경을 뜻밖에 생생하게 보여준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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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향가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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