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 문자가 생긴 뒤의 문학

1447 · 한양(서울)

조선 전기 문학사에는 다른 어느 시대에도 없던 사건이 하나 있다. 문자가 생긴 것이다.

1443년 훈민정음이 창제되고 1446년 반포됐다. 그전까지 우리말 노래를 남기는 방법은 한문으로 번역하거나(공무도하가·황조가), 한자를 빌려 어색하게 적거나(향가의 향찰), 아니면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이제는 들리는 대로 적을 수 있게 됐다.

그 결과가 곧바로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 「가시리」와 「청산별곡」을 읽을 수 있는 것은 조선 사람들이 그것을 한글로 옮겨 적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노래가 조선의 문자로 살아남은 셈이다. 조선 전기 문학을 볼 때는 이 이중성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 새로 쓴 것과 받아 적은 것이 함께 쏟아진 시기다.

【세 갈래】 이 시대의 우리말 문학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악장(樂章)은 왕조를 찬양하는 궁중 노래다. 「용비어천가」가 대표작이며, 새 왕조의 정통성을 선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치적 성격이 뚜렷하고, 그래서 수명이 짧았다. 건국의 흥분이 가라앉자 이 갈래도 함께 시들었다.

시조(時調)는 3장 6구의 짧은 정형시다. 고려 말에 형태를 갖춰 조선에서 만개했다. 사대부부터 기녀까지 폭넓은 계층이 지었고, 이후 조선 500년 내내 살아남는다. 길이가 짧아 즉흥적으로 지을 수 있었고, 노래로 부를 수 있었다.

가사(歌辭)는 4음보가 길게 이어지는 긴 노래다. 시조가 순간을 포착한다면 가사는 이야기를 펼친다. 자연을 노래하고, 여행을 기록하고, 임금을 그리워한다. 정극인의 「상춘곡」에서 시작해 정철에 이르러 절정에 오른다.

【시조 — 가장 오래 살아남은 형식】 시조의 형식은 단순하다. 초장·중장·종장 3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은 4음보다. 특징은 종장에 있다. 종장 첫 음보는 반드시 3음절이고, 둘째 음보는 5음절 이상으로 길어진다.

이 규칙이 시조를 시조답게 만든다. 두 장 동안 상황을 펼쳐놓고, 마지막 장 첫머리에서 "어즈버", "아희야", "두어라" 같은 세 글자로 숨을 고른 다음, 곧바로 결론을 내리는 구조다.

이 종장 첫머리의 감탄어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해서는 앞선 갈래들과의 연결이 지적된다. 향가 10구체의 낙구 첫머리 "아으(阿耶)", 고려가요 「동동」의 후렴 "아으"가 같은 자리에 놓인다. 형식은 바뀌어도 노래를 접었다 펴는 자리에 감탄사를 두는 습관은 천 년을 이어졌다.

작가층도 넓다. 맹사성·이황·이이 같은 사대부가 자연과 도학을 노래했고, 황진이·한우 같은 기녀들이 사랑을 노래했으며, 왕조 교체기에는 정몽주의 「단심가」와 이방원의 「하여가」처럼 정치적 대결이 시조로 오갔다.

【가사 — 어디서 왔는가】 가사의 기원은 논쟁적이다. 경기체가에서 나왔다는 설, 시조에서 나왔다는 설, 악장체에서 나왔다는 설, 한시현토체에서 나왔다는 설, 교술민요에서 나왔다는 설, 불교계 가요에서 나왔다는 설이 병존한다.

발생 시기도 갈린다. 조선 초 발생설은 정극인의 「상춘곡」을 최초로 보고, 고려 말 발생설은 나옹화상의 「서왕가」·「승원가」를 최초로 본다. 이두문으로 표기된 「승원가」와 신득청의 「역대전리가」가 발굴되면서, 발생 시기를 고려 말로 보는 견해가 힘을 얻었다.

형식은 4음 4보격이 길게 이어지는 것이고, 마지막 구를 시조 종장 형식으로 마감하는 것이 전형이다. 즉 가사는 시조의 마무리 방식을 빌려 자기를 닫는다. 두 갈래가 형제 관계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시대의 그늘】 화려한 성취 뒤에는 그늘도 있다.

첫째, 한글은 창제됐지만 공식 문자가 되지는 못했다. 사대부의 진짜 글은 여전히 한문이었다. 「용비어천가」조차 국문 가사 옆에 한역시와 한문 주석을 나란히 붙였다. 한글은 오랫동안 여성과 하층민의 문자, 그리고 노래를 적는 문자로 남는다.

둘째, 이 시대의 대표 작가들 상당수가 정치적 실각과 유배를 겪었다. 정극인은 단종 폐위 후 벼슬을 버렸고, 정철은 당쟁에 밀려 낙향한 뒤 「사미인곡」을 썼다. 자연을 노래한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아름다움 뒤에는 중앙 정치에서 밀려난 자들의 사정이 있다.

셋째, 여성 작가는 기녀 계층에 집중된다. 황진이의 시조가 빛나는 만큼, 사대부가의 여성이 이름을 남기기 어려웠던 구조도 함께 보인다.

【이 시리즈의 지도】 다섯 작품을 다룬다. 「용비어천가」(1447, 경복궁), 정몽주·이방원의 시조 대결(1392, 개경 선죽교), 황진이의 시조(중종대, 개성), 정극인 「상춘곡」(성종대, 전북 태인), 정철 「관동별곡」·「사미인곡」(선조대, 관동 8백리와 창평).

악장에서 시조로, 시조에서 가사로 — 이 시대 문학의 무게중심이 궁중에서 지방으로, 공적 찬양에서 개인의 정서로 옮겨가는 과정을 지도 위에서 따라간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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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전기 문학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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