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다섯 편의 시리즈는 우리말 노래와 소설을 다뤘다. 공무도하가에서 판소리까지, 우리말로 지어 우리 글자나 빌린 글자로 적은 것들이다.
그런데 조선 사대부에게 진짜 글은 그것이 아니었다. 한문이었다. 과거 시험도 한문으로 봤고, 공문서도 개인 문집도 한문으로 썼다. 국문 시가는 여기(餘技), 곧 여가의 재주였다. 정철이 「관동별곡」을 남겼지만 그의 문집 대부분은 한문이고, 김만중이 국문소설을 썼지만 『서포만필』은 한문으로 썼다.
그러니 한문학을 빼고 한국 고전문학을 말하는 것은 절반만 보는 셈이다. 분량으로 따지면 절반도 아니다. 남아 있는 글의 대부분이 한문이다.
【남의 문자인가, 우리 문자인가】 여기서 오래된 논쟁이 생긴다. 한문으로 쓴 글을 한국문학이라 할 수 있는가.
한쪽에서는 아니라고 본다. 언어가 다르면 문학도 다르다는 것이다. 김만중이 『서포만필』에서 한 말이 자주 인용된다 — 한문으로 시를 짓는 것은 앵무새가 사람 말을 흉내 내는 것과 같고, 우리말로 쓴 정철의 가사야말로 참된 문장이라는 취지다. 근대 이후 민족어 문학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이 주장은 힘을 얻었다.
다른 쪽에서는 그렇다고 본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한문은 특정 나라의 언어가 아니라 지역 공통의 문어(文語)였다. 라틴어로 쓴 중세 유럽 문학을 각국 문학사에서 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한국 한문학에는 중국 것과 다른 소재·정서·문제의식이 뚜렷하다.
지금은 후자가 통설에 가깝다. 다만 이 논쟁 자체가 한국 문학사의 특수한 조건을 보여준다 — 우리는 천 년 넘게 두 개의 문자 체계로 문학을 했다.
【흐름 — 세 시기】 한국 한문학은 대략 세 단계로 나뉜다.
첫째, 형성기다. 삼국시대에 한문이 들어오고 통일신라에서 당 유학생이 배출되며 본격화된다. 최치원이 정점이다. 그는 당의 과거에 급제하고 당의 관료로 글을 쓴 인물로, 한국 한문학의 시조로 꼽힌다.
둘째, 전개기다. 고려에서 과거제가 시행되며(958) 한문 능력이 곧 관직의 조건이 됐다. 이규보·이인로·이제현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중국이 아닌 우리 역사를 한문 서사시로 쓴 작품이다.
셋째, 심화기다. 조선에서 사대부 문화가 정착하며 한문학이 지배적 문학이 된다.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소설 갈래를 열고, 조선 후기에는 박지원의 한문단편이 사회 비판의 도구가 된다.
【국문 문학과의 관계】 두 갈래는 따로 논 것이 아니다. 같은 사람이 양쪽을 다 썼다.
정철은 한시와 가사를 모두 남겼고, 김시습은 한문소설과 함께 수천 편의 한시를 썼으며, 김만중은 한문 평론에서 국문 문학을 옹호했다. 박지원은 한문으로만 썼지만 그가 다룬 소재는 국문소설과 겹친다.
다만 역할은 달랐다. 대체로 공적이고 격식 있는 것은 한문으로, 사적이고 정서적인 것은 국문으로 썼다. 관직 생활과 학문은 한문, 사랑과 이별은 국문이라는 식이다. 예외도 많지만 경향은 그렇다.
흥미로운 것은 이 경계가 조선 후기에 흐려진다는 점이다. 박지원은 한문으로 저잣거리 사람들을 그렸고, 김만중은 국문으로 정치를 말했다. 문자와 내용의 짝짓기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다루는 것】 네 인물을 통해 한문학의 흐름을 본다.
최치원(857~908 이후)은 시작이다. 열두 살에 당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고 「토황소격문」으로 이름을 떨쳤으나, 돌아온 신라에서는 뜻을 펴지 못했다.
이규보(1168~1241)는 고려 한문학의 정점이다. 「동명왕편」으로 우리 신화를 한문 서사시에 담았고, 동시에 최씨 무신정권에 협력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김시습(1435~1493)은 「금오신화」로 한국 소설의 출발점을 만들었다. 계유정난으로 세상을 등진 생육신이며, 방외인(方外人) 문학의 상징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 박지원은 앞선 시리즈에서 이미 다뤘으므로 여기서는 다시 쓰지 않고 연결만 해둔다.
【이 시리즈의 지도】 세 인물의 자리는 각각 다르다. 최치원은 당의 양주(揚州)와 신라의 가야산, 이규보는 고려 개경, 김시습은 경주 금오산과 부여 무량사다.
특히 최치원의 궤적이 상징적이다. 당에서 이름을 얻고 신라로 돌아왔으나 육두품이라는 신분의 벽에 막혀 시무십여조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행방이 묘연해졌다. 한문학의 출발점에 이미 좌절이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