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가사』·『대악후보』·『시용향악보』에 전하는 노래다. 서경(西京), 곧 지금의 평양을 무대로 대동강에서 임을 보내는 이별을 노래한다. 지은이와 제작 동기에 관한 기록은 없다.
셔경(西京)이 아즐가 셔경이 셔울히마르는 /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 / 닷곤ᄃᆡ 아즐가 닷곤ᄃᆡ 쇼셩경 고ᄋᆡ마른 / (…) / 괴시란ᄃᆡ 아즐가 괴시란ᄃᆡ 우러곰 좃니노이다
구스리 아즐가 구스리 바회예 디신ᄃᆞᆯ / 긴히ᄯᆞᆫ 아즐가 긴힛ᄯᆞᆫ 그츠리잇가 나ᄂᆞᆫ
대동강(大同江) 아즐가 대동강 너븐디 몰라셔 / 배 내여 아즐가 배 내여 노ᄒᆞᆫ다 샤공아 / 네 가시 아즐가 네 가시 럼난디 몰라셔 / 널 배예 아즐가 널 배예 연즌다 샤공아
현대어로 옮기면 이렇다. 서경이 서울이지마는 / 새로 닦은 소성경을 사랑합니다마는 / 임을 이별하기보다는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서라도 / 사랑만 해주신다면 울면서 따라가겠습니다 //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 // 대동강 넓은 줄을 몰라서 / 배를 내어놓았느냐 사공아 / 네 아내가 바람난 줄도 모르고 / 남의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사공아.
【화자가 남다르다】 「가시리」와 비교하면 이 노래의 성격이 선명해진다. 「가시리」의 화자가 붙잡고 싶어도 참고 보낸다면, 「서경별곡」의 화자는 참지 않는다.
1연에서 그녀는 평생 살아온 서경도, 길쌈하던 생업도 버리겠다고 한다. 사랑만 해준다면 울면서라도 따라가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도 강렬한데, 3연이 압권이다.
임이 배를 타고 떠나자 화자는 임을 원망하지 않는다. 대신 사공에게 화를 낸다. "대동강이 넓은 줄도 모르고 왜 배를 내놓았느냐." 그리고 결정타를 날린다. "네 아내가 바람난 줄도 모르면서 남의 배에 내 임을 태웠느냐."
애먼 사공에게, 그것도 그 아내의 정절까지 걸고넘어지는 이 대목은 고려가요 전체에서 가장 인간적인 순간으로 꼽힌다. 슬픔이 논리를 잃고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 — 실제 사람의 감정이 그렇게 작동한다.
【세 연이 따로 논다】 이 작품에는 구조적 문제가 하나 있다. 화자의 태도가 연마다 일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연은 따라가겠다는 적극성, 2연은 변치 않는 마음의 다짐, 3연은 사공을 향한 원망이다. 특히 2연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겠습니까"는 다른 속요인 「정석가」의 마지막 연과 사설이 정확히 일치한다. 이제현이 이를 한시로 옮기기도 했다.
그래서 두 가지 설명이 제시된다. 하나는 당시 널리 유행하던 관용적 사설이어서 여러 노래에 공통으로 들어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시대 궁중 속악으로 개편되는 과정에서 연이 추가·삭제되며 지금 형태가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음악적으로는 13~14연으로 분석되지만 통사론적으로는 3연 구조로 나뉜다.
덧붙여 「서경별곡」은 성종 때 구악을 정리하며 남녀상열지사로 지목돼 산제(刪除) 대상으로 거론된 작품이다. 그럼에도 원문이 『악장가사』에 실려 전한다.
【대동강이라는 자리】 이별의 무대가 대동강이라는 점은 문학사적으로 흥미롭다.
같은 강, 같은 상황을 노래한 한시가 있다. 정지상의 「송인(送人)」이다. "대동강 물이야 어느 때 마르리 / 이별의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에 더하는 것을." 갈래도 언어도 다르지만 배경과 정서가 겹친다. 고려의 지식인은 한시로, 이름 없는 이는 우리말 노래로, 같은 나루에서 같은 이별을 노래한 셈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무도하가」가 있다. 강을 건너지 말라고 만류하는 노래, 그리고 그 무대가 평양 일대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서경별곡」과 겹친다. 강이 이별과 죽음의 경계로 기능하는 구조가 천 년을 건너 반복된다.
【그때 고려는】 서경은 고려에게 각별한 도시였다. 태조 왕건이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며 중시했고, 「훈요십조」에도 서경 경영이 명시됐다. 노래 1연이 서경을 "서울"이라 부르고 "새로 닦은 소성경"을 사랑한다고 한 것은 그 위상을 반영한다.
동시에 서경은 반란의 도시이기도 했다.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1135)이 실패로 끝났고, 무신정권기에는 조위총의 난(1174)이 일어났다. 원 간섭기에는 동녕부가 설치돼 한때 원의 직할지가 되기도 했다.
그 도시에서 여자가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 강가에 서 있다. 노래는 정치를 말하지 않지만, 그 강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실어 보냈는지는 역사가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