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별곡 — 살어리 살어리랏다

1250 · 고려 개경(개성)

『악장가사』·『악학편고』·『시용향악보』에 전하는 8연 짜리 노래다. 고려가요 가운데 「서경별곡」과 함께 문학성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지은이와 연대 모두 미상이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로라 (…)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ᄅᆞ래 살어리랏다 ᄂᆞᄆᆞ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ᄅᆞ래 살어리랏다

현대어로는 이렇다. 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 살겠노라 /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 울어라 울어라 새여 자고 일어나 울어라 새여 /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고 있노라 // (…) // 살겠노라 살겠노라 바다에 살겠노라 / 나문재 굴 조개랑 먹고 바다에 살겠노라.

【청산과 바다】 구조가 뚜렷하다. 1연에서 청산으로 가겠다 하고, 후반부(6연)에서 바다로 가겠다 한다. 청산과 바다가 짝을 이루며 노래를 감싼다.

둘 다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다. 머루와 다래, 나문재와 굴조개는 농사지어 얻는 것이 아니라 주워 먹는 것이다. 즉 화자가 가겠다는 곳은 생산과 정착의 세계 바깥이다. 살던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의 목적지다.

중간 연들은 그 사이의 신음이다. 새를 향해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운다"고 하고, 이끼 묻은 쟁기를 들고 있으며(경작을 포기한 흔적으로 읽힌다), 어디선가 날아온 돌에 맞아 "누가 던진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는데 맞아서 운다"고 한다. 원인 모를 불행에 대한 가장 정확한 묘사 가운데 하나다.

【화자는 누구인가 — 다섯 갈래】 이 노래를 누구의 목소리로 읽느냐를 두고 견해가 크게 갈린다.

① 유랑민설 — 청산에 들어가 머루나 다래를 따먹고 살아야 하는 민중의 괴로운 삶, 특히 삶터를 잃고 떠도는 유랑민의 처지를 그린 민요로 본다. 화자를 남성으로 보고 민중의 공동작이라 전제한다. ② 민란 참여자설 — 민란에 가담한 농민·어민·서리·노예·광대 가운데 어느 하나, 또는 그 혼합집단의 노래로 본다. ③ 실연자설 — 슬픔을 잊으려 청산으로 도피하고 싶어하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의 노래로 본다. ④ 지식인설 — 고민을 풀려고 청산을 찾아 기적과 위안을 구하면서도 삶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지식인의 술노래로 본다. 이 경우 민요라는 전제가 부정되고, 고도의 상징성을 갖춘 창작 가요가 된다. 무신란 이후 숨어 살던 문신을 떠올리는 독법이다. ⑤ 여인의 한(恨)설 — 닫힌 세계 속에 사는 여인의 한과 고독을 담은 노래로 본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이 노래는 사회사 자료가 되기도 하고 개인의 서정시가 되기도 한다. 결정적 단서가 없어 논쟁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남는 것】 해석이 갈리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이 노래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연을 하나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사연이 들어갈 수 있다.

누가 왜 밀려났는지 말하지 않고, 다만 밀려났다는 상태만 노래한다. 그래서 유랑민도 실연자도 은둔 지식인도 자기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얄리얄리 얄라셩"이라는 뜻 없는 후렴이 그 비어 있음을 더 크게 만든다.

마지막 연에서 화자는 술을 만난다. 강술을 빚는 대목에서 노래가 끝나는데, 이 결말을 체념으로 읽을지 그럼에도 살아내겠다는 의지로 읽을지도 갈린다. 청산에 살겠다는 첫 구절의 "살어리랏다"가 애초에 소망형인지 가정형인지부터 논쟁거리다.

【그때 고려는】 이 노래의 배경으로 자주 지목되는 것은 무신정권기(1170~1270)와 몽골 침입기다.

무신란 이후 문신들이 대거 밀려났고, 최씨 정권 아래 수탈이 심해지며 농민과 천민의 봉기가 잇따랐다(망이·망소이의 난 1176, 만적의 난 1198). 1231년부터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조정은 강화도로 옮겨갔다(1232). 육지에 남은 백성들은 산성과 섬으로 들어가라는 명(산성해도입보)을 받았다.

청산과 바다로 가겠다는 노래를 이 정책과 겹쳐 읽는 해석도 있다. 다만 이는 정황이지 증거가 아니다. 확실한 것은 이 시기 고려에 삶터를 잃고 떠도는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는 사실뿐이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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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고려가요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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