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협회 — 병합을 전제로 한 참정권 청원

1920 1월 18일 · 경성

3·1운동은 일제의 통치 방식을 바꿨다. 무단통치가 이른바 문화통치로 전환되자, 총독부는 억누르는 대신 갈라놓는 전략을 쓰기 시작했다 — 그 도구의 하나가 친일 정치운동이었다. 1920년 1월 18일, 민원식이 총독부 경무국의 지원 아래 자신의 협성구락부를 개칭·확대해 국민협회(國民協會)를 만들었다. 내건 것은 "신일본주의". 독립은 불가능하니 일본 제국의 실정법 안에서 조선인의 권리를 늘리자는 논리였고, 구체적으로는 일본 중의원 선거법을 조선에 시행해 조선인 의원을 뽑자는 참정권 청원운동이었다. 민원식은 1920년부터 세 차례 일본 의회에 청원서를 냈다.

"참정권"이라는 말은 권리의 언어다. 그런데 이 청원의 전제를 풀어보면 방향이 보인다 — 조선인이 일본 의회에 의원을 보내려면, 먼저 조선이 일본이어야 한다. 즉 이 운동은 병합을 기정사실로 굳히고 독립의 요구를 "비현실적인 것"으로 밀어내는 운동이었다. 3·1운동 직후 반독립 여론을 만들기 위한 조직이었다는 것이 학계의 평가다. 주목할 것은 인맥이다. 핵심 인물 민원식·김명준·윤갑병은 모두 일진회 출신이었다 — 한말의 병탄 협력 인맥이, 10년 뒤 문화통치기의 정치운동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1921년 2월, 민원식은 도쿄의 호텔에서 유학생 출신 독립운동가 양근환에게 처단됐다. 국민협회는 이후 윤갑병 등이 이어갔지만 1920년대 중반부터 쇠퇴한다. 총독부조차 참정권을 실제로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이 운동은 지지도 성과도 얻지 못한 채 말라갔다 — 협력의 대가가 협력자에게조차 돌아오지 않은 사례다.

권리의 언어로 포장된 요구가 실제로는 지배를 굳히는 요구였다면 — 오늘 우리가 듣는 "현실적인 대안"들 중에서, 전제를 뒤집어 봐야 할 것은 없을까?

출처

이 글은 협력의 계보 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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